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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유교와 군현제를 결합하는 중국 특색의 정치적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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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29. 17:55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44회>
송재윤
송재윤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중화 문명의 기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였다. 신석기 문화는 황하 유역뿐만 아니라 오늘날 중국 전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다. 청동기 문명 또한 상(商)나라 은허뿐만 아니라 멀리 쓰촨성의 싼싱두이에서 꽃피었다. 오늘날 중화 문명은 '일원(一元) 문화'가 아니라 '다원(多元)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고대부터 그토록 다양한 발전 경로가 나타났다면 과연 중국은 어떻게 하나의 단일한 국가로 유지될 수 있었는가?

외계인 미도가 물었다.

"한족(漢族)은 지구에서 가장 큰 종족 집단이지요? 한족과 견주면 지구의 그 어떤 종족도 소수민족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1930년대 나치 정권이 우생학적 우월의식에 빠져서 600만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했다지만, 오늘날 게르만족의 모든 인구는 1억 2000명을 넘지 못합니다. 한족 인구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죠. 지구인들의 17% 이상이 한족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의 공자상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의 공자상
◇ 지구인 대여섯 명 중 한 명이 한족인 까닭은?

오늘날의 중국은 최소 56개 민족이 살아가는 거대한 대륙이다. 3년 넘게 전개된 치열한 국공내전 끝에 중국공산당은 그 거대한 대륙을 군사적으로 점령했고, 중국공산당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1949년 10월 1일 중공 주석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그 결과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다민족, 다지역, 다문화, 다언어의 중화 대륙 전체가 오늘날까지 중국공산당의 전일적 지배 아래 놓여 있다. 미국 CIA 세계 팩트북(World Factbook)에 따르면, 광활한 대륙 국가 중국에서 91.1%의 중국인은 스스로 자신을 한족(漢族)이라 여기고 있다. 대만, 싱가포르 등 지구 전역의 한족 인구를 통틀면 14억 이상을 헤아린다. 미도의 지적대로 한족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단연 최대의 종족 집단(ethnic group)이다. 세계 인류의 17% 이상이 한족이다. 지구인의 거의 다섯 중 한 명이 한족이라는 얘기. 세상에 어떻게 14억명이 스스로 공동의 조상을 갖는 동일한 종족이라 여기게 되었을까? 실로 불가사의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불가사의를 설명하기 위해선 한족이란 종족 의식이 장구한 역사의 과정에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정체성(fictional identity)이란 점을 직시해야 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적잖은 과학자들은 인종이나 민족을 구별하는 생물학적 분류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유전공학이 더 발전하면서 우생학적 가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한족뿐 아니라 이 세상 어떤 민족도 실은 생물학적 범주일 순 없다. 종족이란 역사적으로 형성된 문화적·정치적 허구이지만, 절대다수의 중국계는 그 허구를 객관적 현실이자 과학적 진실로 믿고 있다.

전 세계 14억 명이 한족 의식을 갖는 현실은 인도-유럽어 계통의 다양한 집단들이 하나의 정부 아래 단일한 민족 국가(nation-state)를 형성하고 스스로 모두 다 같이 아리안족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가상 현실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족은 2000년 이상 유지된 통일 제국 속에서 공동의 종족 의식을 키워왔지만, 아리안족은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아메리카, 유라시아에 흩어져서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왔다는 점밖엔 없어 보인다. 전 세계 14억 인구가 한족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현실은 그만큼 부조리하고 그로테스크하다.
2025년 현재 지구 위에 살아가는 82억 인구 중에서 무려 14억 인구가 한족 정체성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중화 제국을 상징하는 만리장성
중화 제국을 상징하는 만리장성
◇ 유교(儒敎) 이념과 중화 제국의 결합

지구에서 사용되는 7000여 개별 언어들을 해마다 조사해서 발표하는 '에스노로그(Ethnologue)'의 최신 발표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에선 무려 299의 개별 언어가 존재한다. 그중 276개가 언중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살아있는 언어(living language)'들이다. 유럽 대륙에서 사용되는 총 언어 개수도 287개로 집계된다. 언어적 다양성에선 중국이나 유럽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유럽엔 160~200개의 종족 집단이 공존하고 있는데, 중국은 인구의 91% 이상이 한족의 정체성을 갖고 살게 되었을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우선 진(秦) 제국이 말살하려 했던 유교(儒敎)가 국교의 지위에 오른 한(漢) 제국 초기로 우선 돌아갈 필요가 있다.

진시황의 제국은 15년 만에 무너졌지만, 그가 도입한 제국의 시스템은 2000년 이상 중화 제국의 기본 제도로 계속 이어졌다. 선진(先秦) 시대 중국은 통일된 한 나라가 아니라 다수 봉건 제후국의 연합체일 뿐이었다. 주(周)나라 왕실의 직영지는 사방 천리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 밖의 지역은 봉건 제후가 각자 왕(王)의 직위를 갖고서 통치하고 있었다. 진시황은 전쟁을 통해서 지방의 제후국들을 전면 해체한 후 대신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를 파견하여 전국을 다스리는 군현제(郡縣制)였다. 진시황은 고대의 봉건제(封建制) 혹은 분봉제(分封制)를 대신하는 중앙집권적 행정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중국사 최고의 위업을 남겼다.

그 점은 한 제국이 진 제국의 제도를 계승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진이 멸망한 후 들어선 한 제국의 지식인들은 진시황의 학정을 비판하고 진 제국의 제도적 골격을 짰던 이사(李斯)를 역사의 악인이라 비난했지만, 결국 한 제국은 진시황의 군현제를 되살려 중앙집권적 행정 체제를 구축했다. 한 제국 초기에 과거의 봉건제를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 고조는 전국을 동서로 양분하여 직접 통치하는 서쪽 절반엔 군현제를 시행했고, 동쪽 절반엔 고대의 분봉제 전통을 복원하여 군왕(群王)과 제후(諸侯)를 분봉했다.

군현제와 군현제를 결합한 한 초기의 군국제(郡國制)는 머잖아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亂)을 당하면서 군현제로 옮아갔다.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제국의 행정력이 더욱 확대되어 황제가 전국을 직접 통치하는 진나라식 군현제가 확립되게 되었다. 그 이후 중국사는 군현제의 확장 및 유지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일 수 없다.

◇ 중국 특색의 정치적 마술

그렇게 진시황의 군현제를 계승했음에도 한 제국이지만 진 제국을 통일한 법가 사상 대신에 진 제국이 말살하려 했던 유가 사상을 정통의 국가 이념으로 채택했다. 놀랍게도 유가 경전은 통일제국의 중앙집권적 행정 조직을 부정한다. 유가 경전은 중앙집권이 아니라 철저한 지방분권을 이상화한다.

삼황오제를 비롯한 고대의 성왕(聖王)들은 황제가 직접 전국을 다스리는 통일 제국이 아니라 봉건 제후가 대를 이어 각 지역을 통치하는 봉건제를 추구했다. 공자가 오매불망 흠모했던 서주 시대 주공(周公)의 법제는 무려 1,800명의 제후가 천하를 함께 다스리는 천팔백국(千八百國)의 이상을 표방했다. 군현제와 유교 사상의 결합은 기묘한 모순이다.

실제론 법가의 행정 모델을 따르면서 겉으론 유가를 내세우는 외법(外法)·내유(內儒)의 통치술이었다. 중세기의 서유럽처럼 중국이 수백 개의 나라들로 쪼개졌더라면, 오늘날처럼 공고한 한족 집단이 존재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점에서 외법·내유의 통치술은 지구인의 대여섯 명 중 한 명이 한족의 정체성을 갖게 된 중국 특색의 정치적 마술이었다.

송재윤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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