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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면을 채우는 시간, 늦봄의 정원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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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이장원 기자

승인 : 2026. 05. 05. 13:02

양평군 양동면, 한적한 교외·의병 역사 서린 곳
메덩골정원, 한국 전통·세계 철학 담은 인문 공간
열차가 지나는 곳, 석불역·구둔역 추억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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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덩골정원 위버하우스. / 이장원 기자
황금연휴가 어느새 지나 버렸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왠지 모를 피로가 쌓인 이들이 있다. 하지만 연휴가 끝났다고 낙담하기엔 이르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이제 시작이고 늦봄과 초여름까지 나들이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이어진다. 하루 정도만 시간을 내면 한적한 교외에 가서 짙어지는 녹음과 함께 마음의 여유를 찾아볼 수 있다. 지도를 보니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눈길이 간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숨은 봄나들이 명소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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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덩골정원 한국정원. / 이장원 기자
양동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메덩골정원'이 있다. 연휴 때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에 의무적으로 다녀왔다면 이제 내면의 안정을 찾는 봄나들이를 해볼 만 하다. 메덩골정원은 약 6만 평 규모의 인문학 정원이다. 정원이라고 하면 보통 꽃과 나무를 가꾸는 조경을 생각하는데, 사실 메덩골은 이름이 정원일 뿐 조경과 건축, 예술, 인문이 모두 담긴 철학적 공간이다. 니체의 초인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꾸민 정원으로, 한국의 역사·전통·미학과 삶에 대한 성찰까지 담아내고자 고민했다고 한다. 메덩골에 가면 산과 숲이 어우러진 경치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지만, 입구를 지나 만나게 되는 건축물들은 그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인류문화유산으로 천년 역사를 이어간다는 메덩골정원의 목표가 건축에 묻어난다. 메덩골은 지난해 한국정원을 공개한 뒤 날마다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오는 6월에는 현대정원이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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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덩골정원 현대정원. / 이장원 기자
전통 정원의 맥을 이은 한국정원과 연결되는 현대정원은 세계와 대화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니체, 플라톤, 어린 왕자, 카잔차키스, 붓다, 레비나스 등 사유의 경험을 반영한 '생각의 섬'과 선비의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 번영의 시대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담은 '대한민국 이야기'로 구성된다. 프랑스 조경가 기욤 고스 드 고르의 손길이 닿은 현대정원에서는 서양인의 시각으로 풀어낸 거북선도 눈에 들어온다. 언뜻 봐선 거북선처럼 생기진 않지만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는 듯한 모습이 거북선의 기상을 위엄 있게 묘사했다. 현대정원의 예술적 가치를 단지 '포토 스폿'으로 표현한다면 다소 진부하지만, 여기엔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 많다. 사진에 담긴 메덩골의 자연과 건축물, 파란 하늘의 조화는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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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을 표현한 작품. / 이장원 기자
대표적인 건축물 위버하우스 아래로는 니체의 사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미로 건축물과 전쟁을 버텨온 시간을 표현한 고난의 시대 숲길 등 철학과 역사적 의미를 예술로 승화한 작품들이 펼쳐진다. 메덩골은 아직 완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천년을 목표로 삼은 미래를 더 기대하게 하는 곳이다. 앞서 개장한 한국정원은 도슨트 프로그램과 함께한 방문객들로부터 볼거리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메덩골은 현대정원의 개장과 함께 위버하우스 내 레스토랑 운영도 시작할 예정이다. 이동희 셰프가 정원에서 자란 식재료를 식탁 위의 예술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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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덩골정원 현대정원. / 이장원 기자
메덩골정원이 위치한 양동면에서는 정원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 볼 수 있다. 양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다. 주변을 돌아보며 그간 몰랐거나 관심을 덜 가졌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 양평은 이곳이 을미의병이 전국 최초로 일어난 곳이라고 소개한다. 을미의병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으로 을사의병(1905), 정미의병(1907)과 함께 3대 의병 운동으로 꼽힌다. 양평이 을미의병의 발원지인지에 대해선 다른 지역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나 시작의 한 축을 담당한 점은 확실해 보인다. 의병장 안승우와 이춘영, 김백선 등이 양동면이 있던 옛 지평현의 포군 400여명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안승우는 양동면 석곡리 사이실마을 출신으로 양평의병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 의병은 원주, 제천, 단양 풍기 등에서 활약했는데 사격 실력과 조직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 양평의병의 묘역과 추모비가 현재 양동면에 있다. 수도권이지만 농촌마을의 정취를 간직한 양동에서 의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경건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잠깐 시간을 내서 정신을 맑게 할 수 있는 교외 나들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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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병추모비. / 이장원 기자
양동면은 열차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양동면의 중심인 양동역에는 중앙선이 다닌다. 양동역 인근에는 한적한 마을이 있어 잠시 교외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도 있다. 양동은 부추가 유명한 곳으로, 가을 부추축제가 열리는 양동쌍학시장도 양동역 앞에 있다. 오일장이 서는 곳이지만 현재는 장날이라고 할 만한 규모의 장은 서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가게들을 지나 내려가다 보면 이름을 '을미의병교'라고 지은 다리와도 만나 이곳이 의병의 고장임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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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쌍학시장. / 이장원 기자
다리 밑으로는 양평의 자연 도보여행길인 물소리길의 제9길인 구둔고갯길이 지난다. 물소리길은 경의중앙선 역과 역 사이, 또 마을과 숲 사이를 걷는 길인데 구둔고갯길은 옆 동네인 지평면의 구둔역 폐역과 통한다. 특별한 풍경이 있진 않지만 농촌의 아늑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길로, 보행로가 잘 포장돼 있어 잠시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을미의병교 밑에서 구둔역 폐역까지는 약 8㎞를 걸어야 한다. 거리도 거리지만 구둔역이 아트스테이션 조성을 위해 현재 출입이 통제된 점은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둔역은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간이역으로, 영화 '건축학개론' 등 다수 작품이 촬영된 곳이다. 이곳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개발 사업이 빨리 정리되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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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물소리길 제9길. / 이장원 기자
구둔역에서 아쉬움이 남았다면 또 다른 역 명소인 석불역에 잠시 들러볼 수 있다. 파란색 벽에 빨간 지붕으로 만든 석불역은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귀여운 역'으로 통하기도 한다. 장난감집 같지만 실제 열차가 다니는 곳이다. 다른 간이역들과는 달리 그간 이용객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온 것도 특이하다. 석불에서 서울 청량리로 오는 상행선은 ITX-마음과 무궁화 열차가 하루 총 5~6회 가량, 제천·영주·동해·부전 등으로 가는 하행선은 총 6~7회 다니는 것으로 안내되고 있다. 넓지 않지만 주차 공간도 마련돼 있어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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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역. / 이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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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둔역 폐역. / 이장원 기자
이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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