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요구 안정화" 평가에도 산업안전 사용자성 판단 불씨
임금·복지 의제 확산 땐 사후 판단…현장 예측 가능성 과제
|
고용노동부는 22일 개정 노조법 시행 100일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시행 첫 달 이후 신규 교섭 요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현장의 교섭 요구가 안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위원회 판단과 교섭창구 단일화 등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원·하청 교섭이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10일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이달 19일까지 439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1161개 하청노동조합, 조합원 16만4000명이 교섭을 요구했다. 원청 사업장 기준 교섭 요구는 3월 363곳에 집중된 뒤 4월 42곳, 5월 23곳이 추가되는 데 그쳤다. 원청 1곳당 평균 교섭 요구도 2.6건으로 집계됐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일각에서 우려했던 교섭 쓰나미나 무분별한 쪼개기 교섭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며 "원·하청 노사는 노동위원회 판단과 교섭창구 단일화 등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차분하게 교섭을 준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교섭으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며 절차를 진행한 원청은 96곳이다. 이 가운데 51곳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마치고 교섭 의제와 일정 등을 실무협의 중이며, 인천광역시의료원 등 10곳만 상견례 등 본교섭 절차에 들어갔다.
교섭 요구 이후 별도 후속조치가 없는 사업장도 절반을 넘는다. 교섭 요구가 제기된 439곳 가운데 256곳은 노동위원회 시정신청 등 후속조치가 없는 상태다. 노동부는 건설업의 경우 타워크레인 노조가 법 시행 초기 다수의 교섭 요구와 시정신청을 제기한 뒤 일부를 취소하고 다른 기업의 노동위원회 판단을 지켜보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도 돌봄, 생활폐기물 등 노정협의체 논의 상황을 지켜보는 경우가 포함됐다고 봤다.
노동부는 이를 교섭 지연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상견례를 기준으로 공식적인 본교섭에 들어간 곳은 10곳이지만, 51곳은 교섭대표노조가 확정돼 교섭 일정 등을 조율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실무 교섭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원청 사용자성 판단의 경계다. 노동위원회 절차가 진행된 원청은 141곳이고, 이 가운데 사용자성이 인정된 원청은 103곳이다. 결정서가 송달되지 않은 32곳을 제외한 71곳 중 54곳은 노동위 판단에 따라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반면 중노위 재심 절차를 진행 중인 곳도 13곳이다.
특히 산업안전 의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원청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으로서 안전 확보 의무를 지지만, 안전관리 조치가 노조법상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활용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이행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노조법상 사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주요 시설·장비·설비 개선 권한과 사업장 내 위험요인 관리·통제 권한이 원청에 있는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조리실, 세탁실, 통근버스 등 노후시설 개선이 원청 협조나 승인 없이는 어렵다고 보고 산업안전·작업환경 의제에 대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것도 같은 취지라는 것이다.
구내식당 등 사내지원업무를 둘러싼 해석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노동부는 식사 시간에 맞춰 조리·배식을 요구하는 것은 도급 계약의 일반적 지시권에 해당하지만, 조리실 등 시설 개선처럼 원청만 해결할 수 있는 산업안전 의제는 별도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내식당이나 청소 등 지원업무가 일률적으로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교섭 의제가 산업안전을 넘어 임금·복지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남은 쟁점이다. 노동부는 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된 의제에 대해서는 원청이 교섭에 적극 임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다른 의제에 대해 노사 간 이견이 생기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등 현행 절차를 통해 다시 판단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성을 판정받은 의제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며 "나머지 의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하되, 이견이 생기면 교섭해야 하는 의제인지 여부를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제도 등을 통해 판단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올여름 원·하청 교섭이 파업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대차 하청노조와 울산 플랜트 건설노조 등 일부 현장에서 원청 교섭 요구와 쟁의 움직임이 맞물리고 있어서다. 노동부는 지방고용노동관서 전담반과 노동위원회가 현장 상황을 관리하며 교섭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갈등이 있을 때 파업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절차적으로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결국 노사가 대화로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파업이 한두 건 있었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