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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돌아온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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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3. 11. 14:14

국립극단 연극 '만선'
5톤 분량 거대한 빗줄기 '압권'
김명수·정경순 배우, 절절한 관록의 연기 펼쳐
[국립극단] 만선(2025)_공연사진17
국립극단의 연극 '만선'의 한 장면. /국립극단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명동예술극장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남해안의 어느 섬마을로 변모했다. '만선'을 꿈꾸는 한 가족의 비극이 정점에 치달은 순간, 이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거대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자그마치 5톤 분량의 물줄기가 무대를 뒤덮으며 객석까지 파도가 고스란히 휘몰아치는 듯한 장관을 연출했다.

이 장면이 바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정수'로 꼽히는 국립극단의 연극 '만선'의 백미다. '우르릉 쾅쾅' 가슴을 때리는 빗소리를 재현한 음향과 함께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은 살기 위해 비극적 운명에 맞서는 소시민의 삶을 커다란 울림으로 보여준다.

1964년 국립극장 전속단체였던 국립극단은 10만 원의 상금을 내건 희곡 현상공모를 진행했고 이때 천승세 작가의 '만선'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이어 같은 해 7월 초연으로 선보이며,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작가의 작품임에도 가난한 어촌과 화전민의 삶을 다뤘다는 점과 전라도 사투리로 공연된다는 점이 흥미를 자아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또한 제1회 한국연극영화상(현 백상예술대상)에서 천승세 작가가 신인상의 영예를 안으며, '만선'은 현재까지도 국립극단의 공모작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극단] 만선(2025)_공연사진06
국립극단의 연극 '만선'의 한 장면. /국립극단
국립극단은 70주년 기념작으로 윤미현 윤색과 심재찬 연출의 손을 거쳐 2020년 연극 '만선'을 선보이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에야 정식으로 빛을 보게 됐다. 이어 2023년 재연되며 '한국 연극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번 공연이 삼연이다.

작품은 극작 이후 6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경제적 착취 구조와 빈부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신구 세대 간 갈등 등을 그리며 관객에게 진한 울림을 전한다.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어부의 비극적 숙명과 함께 1960년대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서민들의 무력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낸다.

특히 초연부터 함께 한 '곰치' 역의 김명수와 '구포댁' 역의 정경순 배우의 무르익은 연기는 작품의 몰입을 배가시킨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오가며 청룡영화상, 동아연극상 등을 휩쓸어온 두 배우는 이 작품에서도 그 진가를 발한다.

[국립극단] 만선(2025)_공연사진07
국립극단의 연극 '만선'의 한 장면. /국립극단
김명수 배우는 "그물을 손에서 놓는 날에는 차라리 배를 가르고 말 것이여"라고 외치며 바다로 뛰어드는 곰치의 끝없는 집념과 광기를 집요하게 그려낸다. 아들들을 줄줄이 바다에 앓은 어머니 역을 맡은 정경순 역시 우리 정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한'을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정신줄을 놓는 마지막 장면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창'에서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정경순 배우는 이 작품에서 깊이 있는 연기로 1997년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바 있다.

이밖에도 피도 눈물도 없는 선주 역을 맡은 원로배우 김재건, 아내가 셋인데도 곰치의 딸을 탐내는 난봉꾼을 연기하는 박상종 등 대부분의 출연진들이 적재적소에서 명연을 펼쳤다.

다만 사투리를 사용한 대사가 객석에 또렷이 전달되지 않는 점, 초반부 전개가 다소 느린 점 등은 다소 아쉽다. 공연은 이달 30일까지.

[국립극단] 만선(2025)_공연사진14
국립극단의 연극 '만선'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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