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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전세의 종언’? 월세 살면서 집 장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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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2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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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훈
설진훈 논설위원
전세(傳貰)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몇몇 국가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주택 임대차 제도다.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 인도의 '거비' 등이 있지만, 그 비중이 극히 낮다. 임대차 시장의 주된 계약 형태로 자리를 잡은 것은 한국의 전세가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다. 우리나라에선 고려시대 농사짓던 논밭을 담보로 맡기고 집을 빌려 쓴 전당(典當)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대식 전셋집은 100여 년 전 개화기에 등장했다. 경성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자, 사대문 안부터 먼저 생겨났다. 1960~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로 도시 인구가 급증하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 특유의 전세 제도는 흔히 낙후된 금융시스템의 유물이라고 한다. 선진국의 모기지처럼 집을 살 때 목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아 반값에 세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중산층을 만든 일등공신이 전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발시대 주거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온 것도 사실이다. 당시만 해도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환영받았다.목돈이 필요한 집 주인은 무이자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고, 세입자는 월세 부담 없이 저렴하게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세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 제도를 시장 왜곡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사실상 '전세의 종언'을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전세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이고 일종의 사(私)금융인데, 사라져 가는 추세"라며 "최근 전세 물량 급감은 당연한 것이고 정상화 과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들의 보증금으로 사실상 시장금리보다 저렴하게 주택 구입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전세가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를 '주택을 담보로 한 민간 신용시장'으로 본다면 날로 고도화되는 금융사회에서 사라질 운명이 맞을지 모른다. 소위 '빌라왕' 사건으로 불리는 2022년 전세 사기 사건 이후 세입자 스스로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한 경향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월세화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게 문제다. 올 1~2월 전국 주택 임대차 실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8.3%로 2022년 47.1%보다 대폭 높아졌다. 전세보다 월세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훨씬 높다. 특히 청년층과 신혼부부, 무주택 실수요자의 경우 월세금 지출 증가가 내집 마련의 꿈을 더욱 멀게 만든다. 오죽하면 국가데이처 국가통계원구원마저 "월세 비중 상승은 임대주택 시장에서 전세의 자산 축적 기능과 안정성, 내집 마련의 사다리 역할이 약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우려했겠는가.

최근 급격한 월세화는 정부의 규제 탓도 크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실거주 의무 강화와 전세를 낀 주택 구매(갭 투자) 제한 정책, 정부의 전세자금 대출 규제 강화 등이 전세매물 급감을 불러왔다. 매물이 줄자 이달 둘째주 서울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0.32%로 2015년 10월 이후 10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데도 이 대통령은 "전세금이 폭등한 건 아니다"며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진단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고 다주택자들이 내놓은 매물을 세 사는 사람들이 즉, 무주택자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살기 위해 샀다"고 했다. 하지만 주택 대출 한도가 제한된 상황에서 과연 무주택자들이 얼마나 집을 샀을지 의문이다. 특히 주거비 부담에 쪼들리는 월세 세입자들의 매입 비중은 더더욱 낮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은 또 주택 공급 감소와 함께 "전세대출을 많이 해 준 것이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1주택자도 집주인이 직접 살지 않고 전세를 준 경우 전세대출이 소자본 또는 무자본 갭 투자를 부추긴다고 비판한 것이다. 결국 '비거주 1주택자'도 투기를 일삼는 규제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물론 집값 상승기에 전세대출이 집주인들에게 저렴한 주택 구입 자금으로 작용하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투기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 전세대출 규제 강화를 곧 내놓을 계획이다. 서울 등 수도권 규제지역 내 아파트를 소유하면서 다른 주택에 전세를 사는 1주택자 등이 새로 규제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대 정부가 보호해 온 1주택자를 하루아침에 투기꾼 취급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거주자 중에서는 직장 출퇴근, 부모 봉양, 자녀 교육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전세살이를 하는 집주인도 많다. 정부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예외를 두겠다는 입장이지만, 은행 등 금융기관이 대출심사 때 어디까지 예외로 인정할지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정부처럼 유력한 전세매물 공급 통로 역할을 해왔던 갭 투자를 원천 봉쇄하겠다면 전세 소멸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자본축적이 어려운 월세 세입자들은 영원히 내집 마련을 포기해야 하나. 이 대통령이 대안으로 제시한 공공 임대주택이 과연 평범한 중산층의 최종 주거수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부가 '전세의 종언'을 논하기에 앞서 답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설진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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