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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가 지워버린 ‘주니어 훈련장’, 미래의 리더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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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0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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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지난 5월 21일, 개빈 뉴섬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인공지능(AI)이 노동자와 기업, 지역경제에 미칠 잠재적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세계 AI 산업의 중심지인 캘리포니아가 AI의 개발과 규제를 넘어, AI 도입으로 일자리와 삶이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을 정책의 중심에 놓기 시작한 것이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대중의 불안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 직무와 숙련 체계를 뒤흔들어 왔다. 특히 AI는 공장 노동을 넘어 사무직과 전문직의 업무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방대한 보고서를 요약하고, 자료를 조사하며, 코드를 작성하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고객 문의에 답하는 일까지 AI가 빠르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AI가 업무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한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역할은 업무의 모든 단계를 직접 수행하는 방식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판단하며 책임지는 방식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기업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가정하고, 전체 업무를 시작과 중간, 끝의 세 단계로 나누어 보자.

먼저 '시작' 단계에서는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지, 어떤 가치와 기준을 우선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AI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선택지를 넓혀줄 수는 있지만, 무엇을 핵심 문제로 정의할지는 결국 인간의 판단 영역이다.


'마지막' 단계 역시 인간의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AI가 작성한 진단서나 투자보고서, 법률 의견서가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그것을 최종적으로 채택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 결정이 중요할수록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자동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진짜 문제는 업무의 시작과 끝 사이에 놓인 '중간 단계'다. 자료를 찾고, 초안을 만들고, 분석 결과를 정리하고, 여러 대안을 비교하는 일은 AI 시대에 상당 부분 자동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많은 조직에서 이러한 실무는 주로 주니어 인력이 담당해 왔다. 이들은 그 과정을 거치며 단순한 실행 능력을 넘어,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감각과 결과에 책임지는 역량을 익혔다. 중간 단계의 업무는 훗날의 시니어와 리더를 길러내는 훈련장이었다.

이 점에서 AI가 가져올 변화는 긍정적이면서도 우려스럽다. 긍정적인 측면은 AI가 중간 단계의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산출물의 규모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코딩이 자동화되면 더 많은 소프트웨어가 더 빠르게 개발될 수 있다. 조사와 분석이 자동화되면 더 많은 정책 대안과 사업 계획, 투자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중간 단계의 산출물이 늘어나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시작 단계와 어떤 결과를 채택하고 책임질지 판단하는 마지막 단계의 인간 노동에 대한 수요가 확대된다. AI가 발전하더라도 인간 노동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하다. 중간 단계의 업무를 담당해 온 이들이 주로 초급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AI는 일부 업무를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초급 인력이 실무를 배우고 성장하던 훈련장의 입구 자체를 좁힐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AI가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위해 예전만큼 많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이유가 줄어든다. 실제로 AI에 많이 노출된 직종일수록 초기 경력 노동자의 고용이 둔화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청년 개인의 손실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이 당장의 효율성을 이유로 주니어 채용과 훈련을 줄인다면, 몇 년 뒤 조직의 중요한 판단과 책임을 맡을 숙련 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 AI가 초급 업무의 일부를 대신할 수 있다고 해서, 초급 인력을 육성하는 과정까지 사라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초급 인력을 키워내지 못하는 산업은 발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생존 경쟁에 내몰린 개별 기업들은 산업 전체의 장기적 경쟁력보다 비용 절감과 단기 효율성을 앞세워 초급 인력 채용을 줄일 유인이 크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한다면 그 피해는 개인과 기업을 넘어 산업과 국가 경제 전체로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는 청년들이 '월급을 받으며 배우던 시대'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먼저 비용을 들여 훈련받아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AI 시대의 정부는 사회 초년생들이 적절한 현장경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예컨대 과감한 세제 혜택 등의 지원을 통하여 기업들이 사회 초년생을 채용하는 비용을 크게 낮춰야 한다.

AI는 분명 인간이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어떤 직무는 줄어들고, 어떤 역할은 새롭게 중요해질 것이다. 거대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정부가 모든 일자리를 지켜낼 수는 없다. 다만 과거의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청년들이 진입할 '새로운 성장의 입구'를 열어주는 것, 그것이 이 거대한 전환기 앞에 선 정부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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