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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기자의 문화路] 의심이 불러일으킨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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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2. 12. 14:32

이준우·김도영 명콤비가 빚은 치밀한 추리극 '붉은 낙엽'
김강우 절제된 연기 '눈길'...110분 '순삭'·몰입도 '최강'
연극 붉은 낙엽1
연극 '붉은 낙엽'의 한 장면. /라이브러리컴퍼니
무언가를 믿지 못하고 이상히 여기는 '의심'(疑心)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의심은 사람의 마음속에 서서히 파고들어와 내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마치 작은 구멍에 둑이 무너지듯, 특별할 것 없는 사소한 일들에서 오해가 쌓이고 거기에 의심이 더해지면 예상치 못한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추리소설의 대가 토마스 쿡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붉은 낙엽'은 평온했던 한 가정이 의심으로 인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극은 미국의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에릭 무어의 아들 지미 무어가 이웃집 소녀 에이미 실종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받으면서 시작되는 평범한 가족의 파멸을 그린다.

이 연극은 2021년 초연 이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남자연기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장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신인 연출상 등 다양한 연극상을 휩쓸었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르고 있는 이번 공연에는 초연 때부터 함께 해 온 박완규, 장석환에 김강우, 지현준 등 대중적 인지도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합류했다. 드라마 '폭군' '원더풀 월드', 영화 '귀공자' 등으로 잘 알려진 김강우는 연극 '햄릿-더플레이' 이후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실종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에릭 무어 역의 김강우는 많은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발성과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연극 붉은 낙엽2
연극 '붉은 낙엽'의 한 장면. /라이브러리컴퍼니
이번 공연의 연출가 이준우와 작가 김도영은 연극 '수정의 밤' '무순 6년' 등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콤비다. 이들은 연극 '왕서개이야기'를 통해 제57회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2020년 월간 한국 연극 공연 베스트7, 2020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연극 베스트3 공연에 선정된 바 있다. 연극계가 주목하는 있는 이들 콤비는 이번 작품을 치밀하고 탄탄한 수작으로 버무려냈다. 인터미션 없이 휘몰아치는 110분의 공연 시간이 순식간이 지나갈 정도로 작품의 몰입도는 대단하다.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재밌을 정도다.

사실, 좋은 연극이라 해도 공연 시간이 너무 길거나 재미가 없으면 관객이 작품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유명한 작품이라서 보러 갔다가 하품을 찢어지게 하거나, 지루함에 고문(?)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작품성 못지않게 재미도 있는 연극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추리극과 심리극을 절묘하게 공존시킨 연극 '붉은 낙엽'은 제목처럼 무대 위 붉은 낙엽들이 상징적 요소로 사용된다. 의심이 짙어지고 극이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피처럼 붉은 낙엽들이 바닥에 깔려 흉흉함을 고조시킨다.

작품은 가족 간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긴장감 속에 결말을 맞고 나서 허탈해 하는 관객들이 비로소 얻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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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붉은 낙엽'의 한 장면. /라이브러리컴퍼니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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