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게무'는 일본 라쿠고에서 유래한 제목으로 '영원한 생명'을 기원
도쿄에서 백남준의 작품 만나며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여운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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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은 '주게무(じゅげむ·壽限無)'. 아이의 장수를 바라며 끝없이 긴 이름을 붙여준다는 일본 라쿠고에서 가져왔다. 수명에 한계가 없다는 뜻이다. 백남준의 작품도 오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서거 20주기에 고인의 장수를 비는 제목이라니. 그 익살과 다정함이 좋았다.
수조 속 물고기 뒤로 영상이 흐르고, 작은 촛불은 카메라와 프로젝터를 거쳐 벽면의 커다란 빛으로 번졌다. 텔레비전 속에는 진짜 촛불이 켜져 있었다. 익숙한 사물에서 이런 관계를 찾아낼 수도 있구나. 대담한 발상 속에 뜻밖의 섬세함이 있었다. 1993년이면 벌써 33년 전이다. 지금 복고풍의 신작으로 내놓아도 감탄했을 것 같다. 피부의 모공까지 보여주는 초고화질 시대에 거친 브라운관 영상은 여전히 낯설고 생생했다. 브라운관에도 수명이 있고 수리할 부품도 귀해진다. 저 화면을 앞으로 얼마나 더 켤 수 있을까. 작품의 긴 생애에는 기계를 고치고 다시 불을 켜는 사람들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게무'라는 제목에 그 수고까지 담겨 있는 듯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한국전쟁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독일로 향했고, 음악에서 출발해 전위예술과 텔레비전으로 작업을 넓혔다. 이후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일본인 비디오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와 삶을 함께했다. 유복한 성장 환경과 해외에서 배울 기회도 생각하게 됐다. 그가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면 어떤 작품을 남겼을까. 소니와 함께 삼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니터도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제작에 필요한 모니터를 기증했다. 재능과 의지에 배움의 기회, 기업의 후원, 기술자의 손길, 미술관이 더해졌다. 한 예술가가 세계에 큰 획을 긋기까지 얼마나 많은 조건과 만남이 필요한가.
'인연'을 주제로 한 전시층의 안내문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앞으로의 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인연을 맺는 일이 될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오래전에 남긴 그의 문장이 새롭게 읽혔다. 한국과 일본, 유럽과 미국을 오간 그의 인연은 도쿄의 전시장에서 새로운 관객들과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 관람객들과 함께 작품을 보는 마음은 복잡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예술가가 이곳에서 오래 기억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작품을 지켜온 미술관과 찾아오는 이들이 고마웠다. 익숙한 이름에 기대어 작품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나 자신에게는 부끄러웠고, 백남준 씨에 대해서는 미안했다.
관람 뒤에는 지하에도 내려가 보기를 권한다. '온 선데이즈'의 책과 아트 상품들, 일본차를 내는 '아트킷사 베니야'가 기다린다. 촬영이 금지돼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센차나 말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전시의 여운을 되새기는 시간까지 좋았다. 책 한 권과 작은 물건, 차를 마시는 자리에도 미술관의 취향과 생각이 이어졌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다. 도쿄를 찾는다면 백남준을 만나고 차 한 잔의 여유까지 누려보았으면 한다. 말년의 얼굴 위로 물고기와 촛불과 텔레비전을 만나게 한 사람의 상상력이 겹쳐졌다. 백남준은 서거 20주년이건만 '주게무'라는 이름처럼 지금도 살아있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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