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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건네고 내시경 잡고…의사 ‘세 번째 손’ 된 휴머노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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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현 기자

승인 : 2026. 09. 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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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보조로봇 2대, 의사와 한 팀으로 모의수술
간호사·보조의사 역할 나눠 조직 견인까지 수행
인력 공백 보완 목표…2029년 첫 임상시험 추진
휴머노이드 로봇 수술 시연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 주최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에서 오남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분과 교수가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수술을 시연하고 있다./송의주 기자
"가위 주세요" 집도의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 형태의 로봇이 수술도구가 놓인 곳을 살폈다. 도구를 찾아 집어 든 로봇은 의사가 잡기 편하도록 손잡이 방향을 돌려 건넸다. 사용을 마친 도구를 돌려받아 제자리에 놓는 것도 로봇의 몫이었다. 옆에 선 또 다른 로봇은 한 손으로 복강경을 움직여 수술 부위를 화면 중앙에 맞추고, 다른 손에 든 집게로 조직을 당겨 수술 공간을 확보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을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이날 시연에서는 휴머노이드 2대가 각각 수술실 간호사와 보조의사 역할을 나눠 맡고 인간 의사와 수술 과정을 모사했다. 병원 측은 휴머노이드 2대와 의사가 하나의 팀처럼 협업하는 장면을 구현한 것은 세계 최초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국책 과제인 한국형 ARPA-H의 주관 기관으로 선정돼 '효율적 수술환경 조성을 위한 휴머노이드형 피지컬 AI(Physical AI) 기반 수술보조로봇 개발' 과제를 수행 중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에이딘로보틱스, 하해호, 삼성융합의과학원, 서울대, 국립암센터, 전북대병원 등과 컨소시엄 '오케스트라(ORchestra)'를 구성해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개발진에 따르면 실험실 평가에서 음성 명령 인식률과 동작 성공률은 1단계 목표치인 95%를 넘어섰다. 수술도구 5종을 집는 데 모두 성공했고, 의사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 비율은 98.7%로 나타났다. 한국어와 영어 음성 명령을 모두 인식하도록 개발하고 있다.

기존 수술로봇이 의료진의 조작을 정밀하게 구현하는 장비라면 이번 로봇은 의료진 곁에서 반복적인 보조 업무를 나눠 맡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도구 전달과 내시경 유지, 조직 견인 등을 수행하며 기존 수술실과 수술도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처럼 수술 보조 업무에 초점을 맞춘 배경에는 수술실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 있다.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과 숙련된 수술 간호인력의 이탈 등으로 응급수술에 필요한 인력을 제때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반복적인 보조 업무를 휴머노이드에 맡겨 수술실 인력 공백을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단순 반복 업무는 로봇이 전담하고, 의료진은 정교한 술기에만 집중함으로써 수술의 질과 효율성 역시 극대화할 수 있다.

연구 책임자인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대형병원은 사정이 조금 낫지만 지방이나 작은 병원에서는 숙련된 수술 보조인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이 부분을 휴머노이드로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에서 과제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대근무와 휴가 등을 고려하면 수술실 한 자리를 24시간 운영하는 데 약 5명의 인력이 필요한 만큼, 로봇이 실제 현장에 투입되면 충분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수술 시연
휴머노이드 로봇이 오남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분과 교수의 실시간 양팔 원격조작과 음성 명령에 따라 정밀 수술 동작을 구현하고 있다./송의주 기자
휴머노이드 로봇 수술 시연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이 집도의인 오남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분과 교수의 지시에 따라 수술을 보조하는 모습/송의주 기자
다만 이번에 공개된 로봇은 실제 수술실 투입을 앞둔 완성품은 아니다. 5년간 진행되는 한국형 ARPA-H 과제의 2차년도 중반까지 확보한 기술을 공개하는 중간 점검 성격이다. 실제 시연에 나선 로봇의 동작 속도는 아직 사람 수준에 미치지 못했으며, 음성 명령을 인식한 뒤 움직이기까지 2초 이내가 걸렸다. 개발진은 과제 종료 시점까지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보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실제 수술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제도적 과제도 남아 있다. 출혈이나 연기로 시야가 흐려져도 AI가 도구와 조직을 정확히 구분하고, 조직 상태에 맞춰 견인하는 힘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오작동에 대비한 정지·복구 체계와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정할 법적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

개발진은 올해 말 1단계 경쟁평가를 통과하면 후속 연구에 착수해 전임상시험과 안전성·사용성 평가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후 관련 인허가를 거쳐 2029년 내시경 유지 등 위험도가 낮은 보조 업무부터 첫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 상용화는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에이딘로보틱스 등 참여 기업이 주도할 예정이다. 한 대를 여러 진료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범용 구조를 채택하고, 부품 국산화와 모듈 공용화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병원의 초기 도입 부담을 낮추기 위해 판매 외에 임대·구독 방식도 검토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연계한 사업 모델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정 교수는 "수술실에 어떤 형태의 휴머노이드가 적합한지는 아직 정답이 없다"며 "실제 현장에서 사용해보면서 수술실에 최적화되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로봇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배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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