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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로] 촉법소년 14세 유지는 ‘면죄부’…준비 없는 교화는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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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05. 17:32

가해자 낙인 보다 피해자 일상 지켜내야
정부, 신기루 같은 교화 대신 실질적 대책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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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미지는 AI가 생성한 이미지 입니다.
지환혁 사진
지환혁 사회부 차장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의라는 시급한 과제가 결국 한 걸음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사회적 대화 협의체가 내놓은 '만 14세 현행 유지' 권고안은 인권과 교화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흉포화되는 소년 범죄의 불길을 끄기 위한 소방수 역할조차 포기한 무책임한 결론이다. 특히 이번 결정은 피해자들을 '합법적 2차 피해'의 늪으로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해자에 대한 낙인을 걱정하며 '면죄부'를 고민하는 사이, 피해자는 사법 절차와 일상에서 철저히 소외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촉법소년의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흉포해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촉법소년의 소년부 송치 건수는 2021년 1만1677건에서 지난해 2만1095건으로 대폭 늘었다. 중범죄에 해당하는 소년원 송치 처분(8∼10호)은 2021년 28명에서 2025년182명으로 550% 증가했다.

범죄의 사전 예방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범죄가 발생한 뒤의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을 통해 범죄가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중요한 가치라는 점은 국가 치안 정책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소년범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관대하기만 하다. 촉법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 만 10~13세 아동이 범죄의 늪에 빠지기 전 국가가 어떤 울타리를 쳐줄 것인지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권고안에 제시된 보완책 어디에도 '범죄의 입구'를 막는 실효적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다.

북유럽 국가 일부가 형사책임 연령을 15세로 높게 잡을 수 있는 것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 지자체와 학교, 사회 복지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위기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격리보다 보호에 집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사전 예방 인프라는 고사하고 사후 관리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전국 소년원 평균 수용률은 115.2%로 이미 포화 상태이며, 보호관찰관 1인이 담당하는 소년범 수는 OECD 평균의 4배가 넘는다.

이번 권고안 역시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처벌 연령을 낮추는 것이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한 경고장을 보내고, 범죄의 초기 단계에서 법적 강제력을 동반한 강력한 개입을 시작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보여져야 한다. 10세부터 범죄 책임을 묻는 영국은 비인도적인 국가라서 촉법소년의 기준을 낮게 유지하는 것인가. 죄의 무게를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전 예방'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된 예방 시스템도, 충분한 인프라도 갖추지 못한 채 '낙인 방지'와 '교화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가깝다. 결국 촉법소년 연령 하향 유예는 결과적으로 가해 소년에게 범죄를 내면화할 시간을 허용하고, 피해자에게는 국가의 무능과 방관을 목도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현 시스템은 피해자에게 절차적·경제적 소외를 강요하고 있다. 사건이 가정법원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분류되는 순간 재판은 비공개의 장막 뒤로 숨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떤 반성을 하는지, 국가가 어떤 처분을 내리는지조차 알 권리를 박탈당한다. 또 국가가 가해자의 형사 책임을 면제해주면서 정작 피해자가 입은 금전적 손해는 가해자 부모를 상대로 기약 없는 민사 소송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일상에서의 2차 피해는 더 치명적이다.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도 "나는 촉법소년이라 괜찮다"며 거리낌 없이 활보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가해자의 모습은 피해자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짓밟는다.

결국 교화할 능력도 없으면서 '처벌할 권위'마저 포기하는 결정을 정부가 내린다면, 이는 가해 소년의 오만에 실질적인 법적 면죄부를 쥐어주는 셈이다. 법무부는 2031년까지 소년원 시설을 확충해 수용률을 90%까지 낮추겠다는 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장 오늘 발생하는 범죄와 피해자들에게 6년 뒤의 약속은 신기루일 뿐이다. 사회적 대화 협의체는 '유지'를 권고하면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정부가 권고안의 뒤에서 붕괴된 현장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진정한 교화는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가 타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처절하게 깨닫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번 권고안이 가해자인 촉법소년의 미래를 보호하는 결정인 만큼 정부는 피해자들의 무너지는 일상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는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영국처럼 범죄의 싹을 잘라낼 단호한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북유럽만큼 과감한 재원을 쏟아부어 실질적인 교화 인프라를 완성해야 한다. 증가하는 소년 범죄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무너진 시스템의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것만이 '14세 유지'라는 선택을 진정한 사법 정의로 완성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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