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의 주인공은 28세의 필리핀 여성 로도라 알카라즈다. 그는 홍콩 왕푹 코트 아파트 화재 당시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고용주의 생후 3개월 된 아기와 노모를 끝까지 지켜내며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이 모든 것은 놀랍게도 그가 홍콩 땅을 밟은 지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난달 26일, 알카라즈는 낯선 타국의 아파트에 갇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그가 당시 여동생에게 보낸 음성 메시지는 긴박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흐느끼며 간신히 내뱉은 "몸에 힘이 없다.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그의 목소리는 가족과 친구들에 의해 온라인에 공유되며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그런 그의 곁에는 돌봐야 할 갓난아기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있었다. 다행히 소방대원들이 제때 도착해 알카라즈와 아기, 할머니 모두 구조될 수 있었다. 현재 이들은 중환자실을 거쳐 안정적인 상태를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카라즈의 전 고용주였던 로다 린 다요는 "그가 아이를 돌보는 방식은 달랐다. 진정한 사랑이 있었다"며 "그가 돌보는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었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생환 소식에 필리핀은 열광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누나인 이미 마르코스 상원의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알카라즈가 입원한 병원을 직접 찾아 격려했다. 마르코스 의원은 엄지를 치켜세운 알카라즈의 사진을 공유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당신과 모든 해외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필리핀 해외근로자복지청(OWWA) 역시 그녀를 "진정한 현대판 영웅이자 타국에 있는 필리핀인들의 연민과 용기의 표상"이라고 극찬했다.
여덟 명의 형제자매를 둔 알카라즈는 가난한 어부인 아버지와 가족들을 돕기 위해 해외 취업을 선택했다. 카타르에서 2년을 일한 뒤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홍콩행을 택한 그녀는, 비록 끔찍한 사고를 겪었지만 가족과 고국에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77년 만에 가장 치명적인 화재로 기록된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 주에는 인도네시아인 9명과 필리핀인 1명을 포함한 다수의 가사 도우미가 목숨을 잃었다. 홍콩 전체 노동 인구의 10%에 달하는 36만 8000여 명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이 좁은 공간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홍콩 가정의 살림을 도맡고 있다. 대다수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은 방글라데시·미얀마·태국 출신의 가사 도우미들도 증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