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범죄·이민·경기 침체에 흔들리는 남미, 다시 우향우…‘트럼프식 정치’ 확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3.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124010012077

글자크기

닫기

김도연 기자

승인 : 2025. 11. 24. 09:32

트럼프, 남미에 다시 시선…"중국 영향력 되찾기"
엘살바도르·페루·콜롬비아…"강한 정부" 선호 확산
남미 전역에 남아 있는 반미 정서는 여전히 변수
SOUTH AMERICA-AUTOS/CHINA
지난 13일(현지시간) 페루 찬카이항 메가포트에 중국 전기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남미 전기차 시장에서 기존 글로벌 브랜드를 빠르게 따라잡으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범죄와 이민, 경기 침체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남미 각국에서 보수 세력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과 거리를 둔 좌파 정부가 대세였지만, 최근에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우는 우파 정치인들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남미 외교에 다시 시동을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유리한 환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WSJ에 따르면 칠레에서는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구덩이 설치'를 공약한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가 차기 대선에서 앞서가고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20년 가까이 정권을 잡았던 사회주의 세력이 최근 선거에서 축출됐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빈곤층까지도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급진적 긴축정책과 '작은 정부' 기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동안 남미 대륙을 휩쓴 '반미 좌파' 흐름이 약화하고, 시장친화적 정책을 내세운 우파가 다시 중심으로 올라오는 모습이다. 미국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남미 정책에 다시 공을 들이고 있는 트럼프 정부로서는 반가운 변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남미 국가들을 향해 적극적인 외교·경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카리브해에서 마약 밀수 선박을 격침하고,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부에 수십억 달러 상당의 재정 지원을 제공했으며, 중국과의 영향력 경쟁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남미는 리튬·구리·희토류 등 전략 광물과 풍부한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지역이다. 보수·시장친화적 정부가 확산할수록 미국의 접근이 쉬워진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서반구 영향력 회복"이라는 장기 목표를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육군전쟁대학의 에번 엘리스 연구원은 "미국에 매우 큰 전략적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발 난민 급증과 범죄 폭증, 좌파 정부의 경제 실패가 결합하며 우파 후보들의 지지 기반은 더욱 넓어졌다.
마이클 쉬프터 미 인터아메리칸 대화연구소 연구원은 "범죄와 경기 위기 해결을 위해 더 과감한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이 강해졌다"며 "이는 자연스럽게 보수 후보들에게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칠레 대선 1차 투표에서 약 70%가 우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극우 성향의 카스트는 다음달 14일 결선에서 공산당 후보 자라를 꺾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승리를 "자유와 상식의 승리"라고 찬양해왔다.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갱단 소탕을 위해 '초강경 치안 정책'을 펼치며 보수층의 지지를 극대화했다. 중남미 여러 보수 정치인들이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됐다. 페루에서는 범죄·갈취 증가로 내년 대선에서 우파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콜롬비아에서도 코카인 밀매 증가와 현 좌파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겹치며 보수 후보들이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여전히 근소한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마약 조직원도 피해자"라는 발언으로 지지율이 흔들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남미 우파 정부들에 재정·안보 지원을 제공해 왔다. 아르헨티나에 200억 달러 규모 구제 금융을 제공하고, 에콰도르·엘살바도르·아르헨티나와 새로운 무역 협정을 발표했다. 볼리비아 신임 대통령 로드리고 파스의 취임식에는 미 국무부 차관이 직접 참석해 관계 회복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파 정부가 들어섰다 해도 남미 전역에 남아 있는 반미 정서는 여전히 변수다. 미국이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재판 문제에 개입하려 하자, 오히려 룰라 대통령에게 동정표가 쏠리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에콰도르에서는 미국의 군사기지 설치를 허용하는 국민투표가 거부됐고, 파나마에서는 트럼프의 '운하 장악' 발언이 큰 반발을 샀다.

전문가들은 남미 보수화 흐름이 단기간에 다시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올리버 슈텐켈 선임 연구원은 "강경 치안 정책과 초대형 교도소 등이 실제로 범죄를 줄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크다"며 "눈에 띄는 성과가 없으면 민심은 금세 돌아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영향력은 이미 남미 전역에서 깊게 뿌리내렸다. 중국은 남미의 최대 교역국이자 주요 투자·금융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인프라·광물 개발 자금도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온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그동안 문제 삼아온 안보·우주 연구 같은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 역시 지역 전체의 '대중(對中) 경제 연결고리'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도연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