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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랩스게임즈 김재석 공동대표. /김동욱 기자 |
어릴 적 일본 게임 팬사이트를 만들며 HTML과 자바스크립트를 독학했던 소년이 이제 누구나 게임을 만드는 세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스포카, 라인을 거쳐 웹3 게임 '나인 크로니클'로 블록체인 게임의 가능성을 증명한 김재석 플라네타리움 창업자가 올해 7월 디랩스게임즈 공동대표로 합류했다. '기술로 재미있는 것을 만든다'는 한결같은 철학을 좇아 AI와 검증된 IP를 결합해 성숙기에 접어든 웹3 게임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포부다.
김재석 대표의 여정은 '기술 민주화'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일관된다. 소상공인에게 사용자 친화적 기술을 제공하던 스포카 시절부터, 개발자와 사용자에게 탈중앙화 인프라를 제공한 플라네타리움을 거쳐, 이제는 생성형 AI로 차세대 창작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기술의 장벽을 낮춰 개인이 자립 가능한 경제 생태계에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지원한다는 철학이 게임 산업에서 새로운 비전으로 구현되고 있다.
◆ 권준모 의장과 10년 인연...투자자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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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랩스게임즈 김재석 공동대표. /김동욱 기자 |
김재석 대표가 디랩스게임즈에 합류한 배경에는 권준모 의장과의 10년 넘는 인연이 있다. 김 대표가 첫 스타트업 스포카를 운영할 때부터 권 의장은 지분 관계 없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어려운 시기마다 실질적 도움을 제공했다. 이 인연은 플라네타리움이 2022년 디랩스의 첫 투자사로 참여하며 사업적 관계로 이어졌고 김 대표는 투자자 입장에서 디랩스의 성공을 위해 조언을 이어왔다.
올해 7월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며 공동대표로 합류한 김 대표는 역할 분담 체제를 정비했다. 권준모 대표가 글로벌 사업 전략과 마케팅, 외부 파트너십을 담당하고 김재석 대표는 AI 게임 플랫폼 '버스8(Verse8)'을 활용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구조다.
김 대표는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에 주목했다. 플라네타리움의 기술력과 디랩스의 제작 능력, 4:33(네시삼십삼분)의 IP를 결합하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디랩스게임즈의 모회사인 4:33이 보유한 '복싱스타' 같은 자체 IP와 '라그나로크'처럼 사업권을 확보한 유명 IP를 활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자회사인 상장사 썸에이지와는 '데카론' IP뿐 아니라 다양한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며 그룹사 전체의 시너지를 통한 생태계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 "재미없는 게임에 토큰 뿌리는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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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랩스게임즈 김재석 공동대표. /김동욱 기자 |
김재석 대표는 현재 웹3 게임 시장이 초기의 투기적 열풍을 지나 냉철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초기에는 게임 자체의 상업적 경쟁력이 부족한 프로젝트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투자자와 사용자 모두 똑똑해졌다"며 "재미없는 게임에 토큰을 뿌리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통찰은 '나인 크로니클'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얻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완전 탈중앙화라는 웹3의 이상을 구현한 프로젝트였지만, 동시에 높은 기술적 진입장벽이라는 현실적 과제도 체감했다.
이 경험을 통해 김 대표는 웹3 기술이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해쳐서는 안 되며,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게임 내 자산을 진정으로 소유하며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김 대표는 건강한 웹3 게임의 경제 모델을 기업 활동에 비유했다. 좋은 게임이 돈을 벌면 시장에서 토큰을 사들여 소각하는 자사주 매입과 같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지, 연명을 위해 토큰을 계속 발행하는 유상증자와 같은 악순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웹3 게임의 지속가능성은 게임 자체의 완성도와 재미에서 비롯된 유기적 매출이 다시 생태계로 환원되는 건강한 경제 모델 설계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 채팅 몇 줄로 게임 뚝딱...버스8이 깨뜨린 개발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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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랩스게임즈 김재석 공동대표. /김동욱 기자 |
김 대표가 최근 집중하는 프로젝트는 AI 기반 게임 제작 플랫폼 '버스8'이다. 버스8은 사용자가 자연어로 명령하면 AI가 코드부터 캐릭터, 사운드까지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플랫폼이다. 현재 약 200개의 게임이 플랫폼에 등록되어 있으며, 넥써쓰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크로쓰와의 연동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버스8의 경쟁력을 'LLM(거대언어모델)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게임 엔진'이라고 설명했다. 언리얼이나 유니티와 달리 텍스트 기반으로 구조화된 웹 기술 기반이어서 게임 전체를 생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버스8는 2D·3D 에셋 생성, 배경음악 생성 등 게임에 필요한 모든 생성형 AI를 연동했다. 김 대표는 "현재 게임 시장에서 플레이되는 95% 게임이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며 "버스8은 멀티플레이 인프라도 구축해 FPS나 MMORPG도 제작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iOS 18부터 웹GPU가 기본 지원되면서 웹 게임의 기술적 한계가 크게 해소됐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거대 자본이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김 대표의 오랜 개발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는 "원래 게임을 위해 GPU를 열어달라고 했는데 안 됐었는데, AI 때문에 열어주면서 게임도 덕을 봤다"며 "웹GPU는 다이렉트엑스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렌더링 파이프라인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 웹 브라우저에서도 고품질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게임 개발에 대한 독특한 철학도 밝혔다. 제작비가 과도하게 투입되면 오히려 창의성이 저해된다는 분석이다. 그는 "100억을 썼으면 100억을 벌어와야 하니까 게임 개발 방법이 좁혀진다"며 "만들고 싶은 게임을 이야기하면 그게 돈이 되냐는 말을 듣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소수정예 개발진으로 개발을 반복하는 닌텐도 스튜디오 모델을 예로 들었다. 매스 프로덕션(mass production)으로 넘어갈 때는 이미 게임이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 콘텐츠를 늘리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김재석 대표는 "AI로 제작비를 줄일 수 있다면 다양한 게임을 시도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며 "버스8를 통해 개발 지식이 없는 사람도 멀티플레이 게임을 만들어 출시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길을 닦고 싶다"고 밝혔다. 팬사이트를 만들던 소년이 HTML 코드 한 줄 한 줄에서 느꼈던 창작의 즐거움을, 이제는 모든 이가 경험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비전이다.
김재석 대표의 도전이 게임 산업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꿀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