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동안 총리 네 명 낙마…정치적 불안정에 다시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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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프랑스는 20개월 동안 네 명의 총리가 낙마하는 정치적 불안정에 다시 빠졌다. 총체적 위기에 빠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입지는 더 축소되고 정국 교착 상태에 대한 책임론은 확산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에 따르면 하원은 8일(현지시간) 표결에서 찬성 194표, 반대 364표로 바이루 정부에 대한 불신임을 결정했다. 바이루 총리는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가 심각한 상황임을 강조하며 연간 510억 달러에 달하는 지출 절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그의 긴축안은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바이루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군사적 지배나 빚에 짓눌린 채 채권자에게 예속되는 것 모두 자유 상실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경고했으나, 야당 의원들은 "동일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야유를 보냈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는 표결 직후 "오늘은 유령정부의 고통이 끝난 날"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르펜 대표는 올해 초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지만, 여전히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다. 이번 사태가 오히려 르펜 진영의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표결 직후 바이루 총리의 사임을 수용하고 며칠 내에 새 총리를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지지율이 15%까지 쪼그라들었다. 긴축 반대와 반(反)마크롱 시위도 예고돼 있어 정국 운영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차기 총리 인선도 쉽지 않다. 중도 진영에서 후임을 내세우면 임시 봉합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사회당 인사를 기용할 경우 의회 내 지지 기반이 부족하다. 조기 총선은 르펜의 RN이 선두를 확고히 굳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여론조사도 잇따른다.
프랑스 정치는 현재 극우·중도·좌파의 3파전 구도 속에서 타협과 연정의 전통이 없는 채 마비 상태에 빠져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번 불신임 사태는 지난해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의 낙마에 이어 또다시 예산 파행을 불러왔고, 국가 재정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국민총생산(GDP)의 5.8%인 1980억 달러에 달하고, 국가채무는 지난해 기준 GDP의 114%로 유럽연합(EU) 기준을 크게 웃돈다. 바이루 총리는 재정적자를 2029년까지 GDP의 3%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정치적 합의를 이끌지 못한 채 퇴진하게 됐다.
프랑스 경제 위기의 본질은 재정적 문제를 넘어 국가 정체성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교육·의료·연금으로 이어지는 사회안전망은 프랑스 혁명 이래 '형제애' 정신을 구현하는 상징적 제도이자 정치적 성역으로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복지 축소 논의는 정치권에서 금기시된다. 2023년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연금개혁을 추진했을 때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가 이어졌고, 바이루 총리가 공휴일 2일을 폐지해 생산성을 높이고 세수를 확대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을 때도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총리 교체를 넘어, 프랑스 정치체제가 근본적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