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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쌀·소고기 지키고 15%로 낮춘 관세협상 선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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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01. 00:00

FTA·WTO체제 완전 무력화… 새로운 수출·경제전략 짜야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타결된 31일 경기도 평택항에 세워져 있는 수입차 뒤로 철강 제품과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연합
한국과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관세협상 타결에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상호관세를 기존 제시 25%에서 15%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양국간 무역협상이 타결됐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일본·유럽연합(EU)과 합의한 것과 동일한 수준이다. 만약 25%의 관세가 현실화했다면 자동차·반도체·가전 등 우리 주력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협상단과 지원에 나선 민간 기업들의 '필사적인' 협상 노력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상호관세율 15%를 얻어내기 위해 우리는 상당한 규모의 선물을 약속했다. 우선 우리는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7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막대한 자금은 반도체·2차 전자·조선·바이오 등 미래 핵심산업에 투자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우리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제품을 1000억 달러(약 140조원) 규모로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 미국산 자동차·트럭 등에 우리 시장을 추가 개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한국은 최대 민감 품목인 쌀·소고기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고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미국이 원한건 구체적·실질적 수치

이번 협상은 우리 경제의 엔진인 수출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시험대였다. 미국 시장에서 자국 기업은 물론 EU·일본보다 불리한 관세율을 무릅쓰고 경쟁할 경우 자동차와 반도체 등 우리 주력산업의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유예 시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 협상단이 미 카운트파트와 약속마저 잡지 못하면서 관세율이 20%, 심지어 25%로 결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했었다.

결국 미국이 원한 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수치였다. 우리는 일본이 5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만큼 일본 국내총생산의 40%정도인 한국은 2000억 달러의 투자 펀드면 충분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미국의 계산은 달랐다. 미국에 상대방의 경제 규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미국을 상대로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는 것을 '자국에 해악을 끼친' 것으로 보는 미 협상단에게 2024년 기준 일본(685억 달러)과 비슷한 규모의 대미 무역흑자(660억 달러)를 낸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적은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약속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규모가 과다하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는 평가가 더 합당해 보인다.

◇자동차 관세율 15% 합의 아쉬워

아쉬운 부분도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설명대로 일본이 기존 2.5% 자동차 관세에서 12.5% 포인트를 올린 15%로 합의한 점을 고려하면, 기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0% 관세를 적용받던 한국은 12.5%로 결정되는 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현대·기아차 등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 자동차기업들이 기술혁신을 통한 품질 향상, 비용 감축, 브랜드 가치 제고 등 치열한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나마 이달중 미국이 추가로 발표할 반도체·의약품 품목관세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최혜국 대우를 인정받은 것은 다행이다.

◇미국 주도 새로운 통상체제 신호탄

미국이 벌인 주요국과의 통상협정은 미국이 이끄는 완전히 새로운 통상체제의 신호탄이라고 봐야 한다. 먼저 FTA 협정을 맺은 우리에 대해서도 EU와 일본과 똑같은 15% 품목 관세를 미국이 적용했다는 점에서 FTA 체제는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볼수 있다. 우리는 이번에 대상이 된 것 외의 다양한 품목에 대한 FTA 규정을 어떻게 유지하고 시행할 지를 고민해야겠지만,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당연히 2차 세계대전 후 자유무역질서를 규정해온 세계무역기구(WTO)도 형해화를 넘어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미국의 협상 사례를 '모범' 삼아 중국이든, EU든, 일본이든 경제 대국들이 앞으로 자국에 유리한 관세를 무역상대국에 물리면서 해당 무역국에는 자국 수입품에 대해 무관세로 수입할 것을 강요할 수 있다. 호혜성에 기반을 둔 기존의 자유무역체제가 '일방적·불공평한 통상체제'로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자유무역체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게는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수출을 성장 엔진으로 삼아온 우리는 당장 통상과 산업 전략을 시급히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주요 대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하게 되면 국내 산업의 공동화, 일자리 격감, 세수 부족 등의 후폭풍이 거세질 수 있다. 그동안 자유무역 시대에 적응, 진화해온 기업·산업정책, 세제 등 각종 제도를 트럼프 시대에 맞게 새로 짜야 한다. 우선 갈수록 규모와 비중이 늘어날 해외투자기업에 대한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정상회담 안보 이슈 등 다뤄질듯

오는 8·15 광복절 이전에 열릴 가능성이 높은 한·미 정상회담은 단순히 양국 정상이 상견례하고 관세협상 타결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빠진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국방비 지출확대 등 안보이슈를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안보와 통상·경제 이슈가 별도가 아니라 미국에 구체적인 수치로 뒷받침되는 국익의 최대화를 기준으로 통합적으로 논의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관세협상 타결에 긴장을 풀고 있을 게 아니라 급변하는 대외 변수에 정부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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