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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칼럼] 중동전쟁이 추동하는 G. 오웰의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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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10. 17:48

정기종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6월 13일 이스라엘 공군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촉발된 이란과의 원거리 공방전은 21일 미국 B-2 전략폭격기의 핵시설 추가 심층타격으로 확전되었다. 그리고 23일 이란이 카타르와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다시 위기의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였다. 미국이 협상 진행 중에 이란을 기습 폭격하고 이란이 균형외교를 표방하는 카타르 영토 내의 미(美) 공군 중부사령부 전진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 것은 이례적으로 주목할 부분이다. 더구나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불과 40여 ㎞ 떨어진 알우데이드(Al Udeid) 기지가 피격당한 것은 카타르 정부와 국민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으로부터 근 100년간 중동에서는 냉전과 열전이 계속되었다. 미·소 냉전기 미국 해군대학의 필립 크로울(P. Crowl) 교수는 '전략가의 기본교리: 해답이 없는 6가지 질문(The Strategist's Short Catechism: Six Questions Without Answers)'에서 국가의 전쟁 수행에 대해 질문했다. 이것은 전쟁이 어떤 국익을 줄 것인가?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정치적 목적과 군사정책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우리 군사력은 어느 선까지 역량이 있는가? 정당한 전쟁으로 칭송받고 용인될 것인가? 전략이 과거의 경험에 집착해 전략가들을 눈멀게 하는 신경성 집착(Neurotic Fixation)으로 되지는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중동전쟁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20세기 초 등장한 매킨더(H. Mackinder)의 '그레이트 게임' 지정학 개념에서 보면 중동은 군사와 에너지 자원뿐만 아니라 유일신 신앙의 중심지로서 중시된다. 이런 측면에서 중동전쟁은 정치화한 종교 프로파간다가 선동하는 종교 전쟁이며 상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非)아랍민족인 이란이 이슬람 혁명 지도국을 자처하며 이스라엘 타도에 앞장서는 것도 하나의 예다. 세계관이 다른 만큼 정치경제적 의제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난제다. 성지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둘러싼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소유권 주장 역시 '평화와 땅의 교환(Land for Peace)'이라는 협상의 기본원칙을 훼손한다. 물리적 등가 교환이 가능한 단순한 '땅(Land)'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사국이 아닌 제3국이 판단할 수 없는 신념 체계로 단지 군사력만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20세기 말 소련 해체기에 후쿠야마(F. Fukuyama)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인류사의 마지막 동인(動因)으로 이슬람을 지목했다. 실제로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된 후 가시화하는 듯했던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는 2001년 9·11테러로 시작해 걸프전과 아랍 내전과 같은 일련의 중동 분쟁과 함께 다극화했다. 현재의 중동 상황이 곧바로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지는 않겠지만 이스라엘은 아랍의 분열과 하마스 박멸을 목표로 그리고 이란은 지역강국으로서의 영향력 확대와 이슬람 국가의 단결을 유도하기 위해 간헐적 전쟁을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미국, 러시아, 중국이 주동하는 국제사회의 진영화가 추동력을 받을 것이다.

소련의 '베를린 봉쇄'로 범지구적 냉전체제가 본격화한 1949년 G. 오웰은 '1984'를 출간해 '유라시아'와 '동아시아' 그리고 '오세아니아'로 삼분된 지구의 미래를 예견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국지전과 심리전이 국가와 국민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했다. '빅브라더(Big Brother)'의 감시와 통제 속에 개인이 소거된 디스토피아 전체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오웰은 거짓을 진실로 선전하는 '진리부', 전쟁이 평화를 지킨다는 표어를 내건 '평화부' 그리고 맹목적 순종이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며 시민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사랑부'를 제시했다. 프롤레타리아 유토피아를 내세우며 탄생한 소련에서도 1924년 E. 자먀찐이 '우리들(We)'을 발표했다. '은혜로운 분'과 과학기술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공산주의 기술독재 사회에의 경고였다.

2000년대 들어 세계는 분쟁지역의 증가와 함께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마저 쉽게 공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중동에서는 연이은 전쟁으로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가 붕괴하고 정치적 후진성과 비민주적 사회가 고착화했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일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아브라함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여기에 배제된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무모한 도발로 2023년 10월 가자 전쟁이 발발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반성에서 출발한 유엔 헌장의 취지가 희미해지고 전쟁과 반지성(反知性)의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중동평화과정이 재개될 필요성은 크다. 2002년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아랍 평화 이니셔티브' 제안과 2003년 유엔과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쿼르텟(Quartet)의 '중동평화 로드맵'의 재가동을 위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하는 당위성이다.

전쟁국가의 폭력성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도 가해진다. 지도자의 독선이나 정부 실책이 은폐되고 사회 내에는 언어와 물리적 폭력이 일상화한다. 이뿐만 아니라 국민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해 국가의 발전 동력을 약화시킨다. 대한민국은 그간 축적한 G20의 국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질문할 시기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것은 건국 이후 줄곧 우리 정부가 대외적으로 전달한 바와 같이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와 중동의 근현대사는 지정학적으로 유사한 경험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찰과 정확한 대응이 요구되는 때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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