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콘텐츠 지원은 자본 부족 허덕이는 국내 제작사에 도움 안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적기…새로운 도약 위한 구름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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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영화인들의 목소리에는 예전과 달리 공통적으로 체념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배우 고(故) 강수연이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의 영화 스태프를 격려하는 술자리에서 입에 달고 살았던 한마디로, 영화 '베테랑'에 삽입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식의 한국 영화인 특유의 기개와 자존심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였다. 대신 그 빈 자리에는 '백약이 무효, 뭘 해도 안 돤다'는 자조 섞인 패배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마냥 보였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국내 유수의 투자·배급사에서 일하다 독립해 2편의 장편 상업 영화를 만들었지만 코로나 19 펜데믹 이후 수 년째 개점휴업 상태인 한 제작자는 "시나리오 개발이 불황으로 인해 중단되면서,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극장에 걸 만한 영화가 감소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버린 느낌"이라고 하소연한 뒤 "밭에 씨를 뿌리지 않는데 무슨 재주로 열매를 얻겠나. 당장 기획·개발비부터 빠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나름의 대책을 제시했다. 또 복합상영관 체인의 한 실무 책임자는 "이 어려운 마당에 해결책이랍시고 제시되는 방안들이 독립 영화에 의무적으로 스크린을 내줘라는 등의 영양가 없는 얘기들뿐"이라며 "시장 상황을 잘 모르면서 목소리만 큰 비 전문가들이 영화계 주변에 너무 많다"고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관련 공기관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로 무게 중심이 쏠린 것처럼 여겨지는 정치권의 영상 산업 지원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쏟아냈다. 또 다른 영화 제작자는 "영화만 콕 집어 도와달라는 건 아니지만, 대선을 앞두고 3당이 발표한 대중 문화 산업 지원 방안에 '영화'란 단어가 들어가있지 않은 것은 조금 충격적"이라며 "제작과 투자·배급, 극장이 성공의 과실을 나눠가지는 영화계와 달리 현재의 우리나라 OTT 시장 구조에서는 제작사가 드라마를 많이 그리고 잘 만들어도 거의 모든 수익은 넷플릭스처럼 IP(지식재산권)를 가진 OTT 업체에 돌아간다. 영상 산업의 토대 강화를 위해서라도 흥행 성공시 개별적 자본 축적이 가능한 영화를 대상으로 정부의 구체적 지원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뒤흔들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 어려움을 딛고 근본적 체질 개선이 이뤄진다면 현재의 나락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구름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새 정부의 정교한 맞춤식 도움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격언으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실은 가장 빠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