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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한국인의 삶을 가지런히 보여주는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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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2. 09. 18:14

<7> 아산 '온양민속박물관'
세시풍속을 보여주는 전시장
고유의 세시풍속을 보여주는 온양민속박물관 전시장.
박물관 중에서도 민속박물관은 얼핏 생각하면 수집이나 전시, 운영이 가장 쉬운 듯 여겨지면서도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곳이다. 인간의 삶과 더불어 흘러온 역사와 문화를 죄다 설명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이름난 그곳, 충남 아산의 온양민속박물관을 찾아간다. 1978년 10월, 박물관법 제정을 앞두고 문을 연 온양민속박물관은 국내 민간 박물관 설립의 청신호였다. 당시로는 국가시설과 비견되는 큰 규모였다. 아동도서출판사 '계몽사'의 창업주인 설립자 김원대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의 높은 가치를 눈으로 확인시키겠다는 뜻이 담긴 이 박물관을 세웠고, 아산 현충사로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건축가 김석철은 권위적인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외관을 벽돌로 만들었고, 아산의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는 방식과 색채는 공주 송산리의 무령왕릉 내부를 모티브로 조성했다.

게다가 모두들 잘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실현한 것이 놀랍다. 건물을 짓고 유물을 들인 게 아니라, 전시 콘셉트를 반영해서 박물관을 설계한 것이다. 부엌과 안방, 사랑방과 대청이 이어지는 한옥도, 실제 고기잡이를 하던 배도, 큰 덩치의 뒤주도 실감 난다. 오방색을 배경 삼아 전시된 유물마다 이야깃거리가 넘쳐날 듯 보인다. 주제와 순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면서도 정기적으로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는 방식은 '한국인의 삶'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올해로 설립 47주년. 선대의 뜻을 받들어 온 김은경 관장과 많은 이의 수고로움이 2만2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6만㎡의 박물관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제1전시실에는 '한국인의 삶'이 펼쳐져 있다. 삶이나 죽음을 소재로 박물관을 꾸리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면 의외로 술술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사람의 한 생(生)을 생로병사, 관혼상제로 나눠서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삶이 착착 정리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삶을 일궈낸 여러 흔적들이 모여 눈부신 희망을 만들고, 그 희망 끝에 매달린 어두운 죽음을 거두면 삶이란 다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한국인의 삶을 가지런히 보여주는 전시장 한 코너에서 삶은 죽음에 닿아 있고,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걸 보았다. 나는 예전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마침표인지, 쉼표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죽어서 가는 세상이 있다 하니,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쉬다 가시는 것이 맞을 거란 생각과, 기척 없이 계신 걸 보면 그야말로 촛불 꺼지듯, 마침표를 찍고 가버리셨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었다.

제2전시실은 '한국인의 일터'로, 제3전시실은 각종 공예, 민속 신앙과 놀이, '한국문화와 제도'로 전시의 반경을 넓힌다. 교과서로 배운 '규중칠우쟁론기'를 반짇고리, 바늘, 골무 등과 함께 보면 더욱 실감이 나는 식이다. 드넓은 정원 곳곳에서는 다양한 표정의 석조유물과 장승, 연자방아, 디딜방아, 기름틀까지 만난다. 그리고 옛 건축물들도 볼 수 있는데, 본관과 조화를 이루는 구정아트센터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유독 한국성을 고집해 온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 1937~2011)이 한국에 설계한 최초의 건축물로 그만의 치열한 열정과 고민이 묻어있다. 경계인으로 살아왔지만 이렇게 토속적일 수 있을까. 지붕은 거북선 모양에다 전통 기와를 이었으며, 충청도의 아름다운 민가를 표현한 '흙으로 빚은 조형물'이다. 특히 '땅과의 조화가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설립자 호를 빌어 이름 붙여진 이 건물은 자칫 편견 속에 빠질 수 있는 박물관의 여러 기우를 말끔히 씻어주며 뜻밖에 발견되는 '온고지신'의 메시지가 아닐까.

온양민속박물관의 설립 이야기가 담긴 영상 다큐멘터리 '하늘에 間 박물관'(2010년 작)을 보았다. 유물을 찾으러 간 박물관 사람들이 '죽은 자와 어떻게 함께 기억을 나눌까 고민하며 물건들을 가져왔다'고 얘기한 것을 '유물마다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죽은 자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다큐멘터리는 표현했다. '박물관이 지닌 죽음을 향한 태도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연출자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역사를 기억한다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 살 때까지 살 것인가, 죽을 때까지 살 것인가. 죽음 앞의 시간들을 보여주는 박물관은 한국인의 삶에 어떤 느낌을 불어넣었을까. 한 인간의 생은 죽음 뒤에 남는 것으로만 이야기되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늘 삶과 죽음이 어울려있는 현장을 보며 살아 가는 것이다.

한국인의 문화유전자가 담겨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을 한마디로 알려주기란 쉽지 않다. 유물의 양이나 전시 규모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토종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고집스럽게 한국인의 삶, 일, 문화를 보여주는 이 '안성맞춤' 박물관을 찾을 때마다 매번 전시물이 더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 한국인임을 잊고 살았다는 것의 슬픈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대를 넘어 다시 찾게 하는 힘일지도 모를 일이다.

박물관에 대한 은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우리네 삶의 독특한 '맛'을 전하고, 한국인의 겸손, 예의, 배려를 배울 수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은 '나'를 정확하게 알게 하는 곳인 듯, 결핍주의자인 '나'는 어디서 살든 늘 허리 숙여 진심의 인사를 건네고 싶어진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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