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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칼럼] 헌재는 존재 이유를 입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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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1. 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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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현 헌법재판소 경내의 동산에는 600년 수령의 백송이 서있다. 볼수록 아름답고 신령스러워서 넋을 잃고 보게 되는 귀한 수목이다. 그 뜰의 쉼터도 아늑하고 좋아서 외국인 친구가 왔을 때 데리고 가서 보여주며 헌재의 터에 서린 우리 역사의 격랑 몇 장면을 소환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고을 이름 '재동'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중신들을 죽였을 때 피가 내처럼 흘러서 주민들이 그 피를 재로 덮었기에 '잿골' 후에는 '재동'으로 불렸다. 한말에는 김옥균 등 개화파들과 민씨 세력이 거주했다. 이 헌법재판소 터에는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이 있었다. 박규수(연암 박지원의 손자)는 개화파 청년들을 자기 집 사랑에 불러들여서 문명개화해가는 세계의 모습을 알려주었고 쇠잔해 가는 나라의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그곳을 무수히 오갔다.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허망하게 끝나자 홍영식이 자기가 뒷수습을 맡겠다면서 동지들을 일본으로 피신시키고 자기는 살해되었고 그의 일족 20명이 그의 아버지의 명에 따라 자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변의 현장에서 칼에 베인 민영익을 치료한 의료선교사 알렌(Allen)이 홍영식의 집을 고종에게서 하사받아서 한국 최초의 서양의료원인 광혜원을 열었다고 한다.

그 후 경기고녀가 그곳에 세워져 조국근대화를 담당할 여성인력을 길러냈고 1945년 경기여고가 정동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창덕여고가 옮겨와서 40여 년 동안 여성인재를 양성했고 1993년부터 헌법재판소가 자리를 잡았다.

슬프고 안타까운 내력도 있지만 숙연하고 품격 높은 터인데 오늘의 헌법재판소가 터값을 하는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처음 헌법재판소가 이전했을 때 어떤 사안이 합헌인가 아닌가를 가리기 위해서 그렇게 웅장한 건물과 여러 명의 재판관이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고 한편 나라의 헌법을 수호해서 나라의 근본을 확실히 한다면 헌재재판관들이 대법관들보다도 격이 높아야 맞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대 헌재재판관의 면면을 보면 각자 내로라하는 이력을 자랑하는 인물들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어느 헌재재판관을 거론할 때 그의 경륜이나 법리에 대한 통찰력을 살펴보지 않고 다만 그들의 (이념) 성향만을 주목하는 것 같다. 즉, 헌재재판관은 어떤 소추서상의 항목별 합헌 또는 위헌성을 따져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념, 당파성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불편부당한 판결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헌법재판소란 말인가? 물론 재판관이 사람이니까 어떤 사안을 검토할 때 그의 이념이나 시각이 작용하게 되겠지만 그것을 인식하면 최대한 이념이나 성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헌법에 비추어 분석을 하도록 고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위험천만한 벼랑 끝에 서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노회한 술수와 민주당 의원들의 염치없는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압박 전술에 의해서 손발이 묶이고 코너에 몰린 대통령이 발동한 비상계엄은 세 시간 만에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스러졌지만 그 후유증은 우리나라를 통치공백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여기서 한 번만 발을 헛디디면 무법천지, 무간지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존립 또는 멸망이 헌재재판관들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여기서, 헌재재판관들에게 요청할 것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청구하는 민주당이 소추서에서 '내란죄'항목을 삭제한 것은 물론 탄핵심리를 단순화함으로써 하루속히 윤 대통령의 탄핵인용을 받아내서 이재명 대표의 형 확정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윤 대통령을 축출하고 조기대선이 치러지도록 하려는 것이니, 이는 우리의 헌법조문과 헌법정신에 모두 위배되므로 소추서를 반환하고 민주당이 탄핵을 다시 의결해 오기까지 윤대통령으로 하여금 다시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할 것.

둘째, 만약 민주당이 기어코 재차 탄핵을 의결해서 새로이 탄핵소추서가 제출되면, 국민대 법대 학장(전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이호선 교수가 헌재재판관 전원에게 전달한 공개서신에서 촉구했듯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했던 사유인 국회의 입법권 남용, 탄핵권 남발, 예산 삭감으로 인한 행정부 기능 마비 현상과 선거시스템에의 부정행위 개입 가능성에 대하여 사실 조사를 거쳐 헌재가 판단을 내려줄 것.

셋째, 선입선출의 원칙에 따라 헌재에 이미 계류 중인 방통위원장, 검사들, 그리고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탄핵 인용 여부를 대통령 탄핵 결정 이전에 먼저 판단해서 민주당의 탄핵권 남용,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 마비 시도 행태에 대하여 헌재가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되지 않도록 해 줄 것.

넷째, 선거시스템과 관련하여 부정선거의 유무가 아닌, 부정이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적 약점이 있는지, 이 약점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선관위가 얼마나 보여주었는지 파악해 줄 것 등이다. 무엇보다도 선거는 민주주의의 운용엔진인데 선거부정을 고발하는 시민이 그토록 많은데 선관위는 어떠한 공권력도 미칠 수 없는 기관이어서 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음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아니겠는가?

만약 헌재재판관들이 이 나라의, 그리고 모든 국민의 운명이 헌재의 판결에 달린 이 시점에서 여러 건의 복잡한 케이스들을 확고한 원칙에 따라 정확한 순서를 정해서,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로 심리하지 않는다면 헌재는 나라와 국민을 지옥에 빠뜨린 중죄인이 될 것이고 '헌재 폐지'의 요구가 전국에 메아리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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