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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칼럼] 시리아의 붕괴와 21세기 외교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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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2. 17. 17:55

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12월 16일 저녁 카타르대사관이 주최한 국경일 리셉션에는 많은 하객이 참석해 카타르의 국경일을 축하했다. 카타르는 한국에 도입되는 천연가스의 30% 정도를 공급하는 만큼 우리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다.

주한외교단 대부분이 참석한 화려한 연회였지만 우호적인 친선만 나누기 어려웠던 것은 중동전쟁과 우크라이나전쟁 때문이다. 12월 초 불과 일주일 정도 만에 전격적으로 발생한 시리아 아사드 정부의 붕괴와 이스라엘군의 다마스쿠스 접근은 국가 간 정치에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다. 지금이 대한민국이 신중하게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임은 명확하다.

1904년 영국 왕립지리학회(RGS)에서 매킨더는 '역사의 지리적 추축(The Geographical Pivot of History)' 제목의 중심지(Heart Land) 이론을 발표했다. 매킨더는 세계를 4개의 지역권으로 나누어 첫째, 추축지역인 유라시아 대륙과 둘째, 대륙과 해양의 경계지역인 발칸반도와 인도 그리고 한반도. 셋째, 외곽의 해양지역. 넷째, 아프리카와 호주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과 태평양을 외부지역 또는 도서 반달지역으로 분류했다. Corea로 표기된 조선은 중심지를 차지하려는 국가들의 투쟁 중에 활용될 수 있는 국가에 포함된다.

이 시기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수차례 전쟁으로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였다. 영국 해군은 1885년부터 1887년까지 거문도를 해밀턴 항(Port Hamilton)으로 호명하면서 불법 점령했고 1849년 프랑스 해군은 동해에서 독도를 리앙쿠르(Liancourt)로 이름 붙였다.
서구적 관점에서 창출된 매킨더의 지정학은 1997년에 브레진스키(Z. Brezezinski)의 '더 그랜드 체스보드(The Grand Chessboard)'의 신지정학적 세계전략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2007년 뮌헨안보회의(MSC)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의 동진 논리를 용인할 수 없다고 비난 연설을 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등장한 레벤스라움(Lebensraum)의 생활권 주장을 상기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역사의 지리적 추축'이라는 20세기의 지정학은 100년 후 교통과 통신기술의 초월적 발달로 상당부분 수정되었다. 매킨더가 종속변수로 취급했던 인도와 발칸반도는 정치경제적 민족주의의 부상과 국력의 상승으로 국제정치에서 역할이 상수(常數)화했다. BRICS와 같은 신흥세력의 경제력은 유럽연합을 넘어서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역량 역시 경이적으로 강화되었다.

6·25 전쟁의 종전을 앞두고 1953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군 반공포로 약 2만7000명의 석방을 단행했다. 동맹국 미국의 반대를 거부한 한국정부의 단독결정에 냉전학자들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Wag the dog)"고 표현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가치의 실천이었고 무도한 전쟁에 끌려온 동포의 구출을 위한 결기였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와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1994년 클린턴 미 행정부가 북한핵시설 폭격을 입안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한반도 전쟁 발발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미국의 공격 계획을 무산시킨 것도 이러한 견지에서 나온 자주적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은 명나라와 문제가 발생할 때 사대(事大)의 예(禮)를 갖추되 유교적 명분과 논리를 전략화하면서 국가의 실리를 확보했다. 태조 7년인 1398년 윤달 5월 국왕 이성계는 명나라가 억지 죄목을 붙여 억류 중인 조선 사신들의 석방을 위한 방략을 논의했다. 변중량과 신하들은 "옳지 못한 명령에 임시변통으로 먼저 겁내면, 잇따라 따르기 어려운 명령이 있을것"이라면서 "그 원통함을 변명하고 우리의 강한 형세를 보일 것"을 진언했다.

이 같은 점을 주목한 미국 예일대학 교수 베스타는 조선 왕국과 명 제국 간의 관계를 힘이 아닌 정의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그리고 양국관계에서 조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로 '의로움(Righteousness)'을 들었다. 유교사상에서 말하는 도덕적 정확성과 충성심 그리고 원칙에 대한 성실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 주도의 동북아 질서 안에서 조선은 약소국이었지만 강대국에 필적하는 가치를 지닌 국가였다는 평가다.

2024년 11월 미국의 대선 결과 트럼프 정부가 재등장하게 됐다. 방위비의 대폭 증액요구나 한국을 배제한 북한과의 직접협상 그리고 중국·러시아·북한 간에는 동상이몽(同牀異夢)과 같은 기묘한 동북아연대를 비롯해 복수의 외교트랙이 중첩되어 가동되는 복합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복수(複數)의 전쟁에서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현실감각을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

화투나 포커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포커페이스에 속거나 상대편이 약한 카드를 숨기고 밀어붙이는 블러핑(Bluffing)에 굴복하고 만다. 정(正)으로 대치하고 기(奇)로 승부를 낸다는 국가 간 전략대결도 마찬가지로 일종의 마인드 게임(Mind Game)이다.

모든 국가는 국익을 위해 외교를 활용한다. 냉엄한 국제조류의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원칙과 철학을 갖고 우리가 가진 비대칭적 국력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를 형성하는 모든 공동체가 합력(合力)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국익을 위한 전략적 사고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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