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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년의 잡초이야기] 여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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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0. 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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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뀌
이맘때 쯤이면 항상 우리 집 화단 한 귀퉁이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꽃이 있다. 붉은색·흰색이 촘촘히 박혀 조화를 잘 이루는 '여뀌'다. 특히 올해는 기후가 잘 맞았는지 바로 옆 과수원 배나무 밑에도 여뀌가 군락을 이뤄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금이야 화려한 개량종 꽃들이 넘쳐나 여뀌가 돋보일 기회가 없지만 예전에는 이런 앙증맞은 모습이 꽤나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진경산수의 달인 겸재 정선, 절정의 초충도를 그려낸 신사임당의 그림에 여뀌가 등장한다.

여뀌는 오래전 선조들 음식의 향신료, 약재, 염색 재료 등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조선 초기인 1459년경에 저술된 요리책이자 농업책인 산가요록에서 출현빈도가 높은 산야초들 가운데 하나가 여뀌였으며, 1527년 발간된 훈몽자회에서는 채소로 분류하고 있다.

여뀌는 '맵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줄기나 잎이 매운 성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여뀌풀을 돌로 짓이겨서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비실비실 떠오르던 기억이 난다. 여뀌잎을 몇 개 따 통째로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생각보다 매운맛이 덜하다. 세상이 하도 매워져서 여뀌가 '맵쟁이'가 되길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내 미각이 매운 맛에 둔감해진 것일까.
그 어떤 산야초보다 옛 선조들에게 많은 것을 주며 함께해 왔지만 이제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여귀…. 그 여뀌를 위해 오늘은 그림에 한껏 멋을 부려보고 싶다. 여뀌를 정성스레 묘사하고, 겸재 정선과 신사임당의 그림 속에 등장했던 사마귀와 개구리, 벌을 그려 넣는다. 잡초는 참 고마운 식물이다. 잠시나마 정선과 신사임당이 되어보는 기분도 안겨주니 말이다.

/만화가·前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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