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부과로 과도한 이중 제재를 가할 위험
무(無)피해소송 남발·사법 시스템 상업화 우려
미국과의 통상 마찰 및 대외 리스크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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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급입법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고 법적 안정성을 해치며 죄형법정주의 위반이기 때문에 법치주의 선진국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소급적 집단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례로, SK텔레콤(SKT) 유심(USIM) 정보 노출 사고가 있다. 사고의 피해자는 약 2300만명으로 추산되었고, 회사는 이상 징후 인지 즉시 악성코드 삭제 및 해킹 의심 장비의 격리조치를 하였다. 전국 T월드 매장을 통해 전 가입자 대상 유심 및 eSIM 무상 교체 서비스를 시행했다. 정부와 협력하여 해당 서비스 가입 고객에게는 유출 정보 악용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100% 보상하기로 했다. 이 사태로 인해 SK텔레콤이 입거나 지출해야 하는 총 누적 비용 추계는 최소 9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소급적용될 수도 있다. 쿠팡 회원 일부가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으며, 분쟁조정위는 쿠팡이 피해 고객들에게 1인당 1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조정안을 마련했다. 쿠팡측은 지난 9월 11일 조정안 '불수용' 입장을 최종 통보했다. 쿠팡은 사태 직후 피해자로 알려진 3370만명 전원을 대상으로 1인당 5만원 상당의 이용권(총 1조6850억원)을 선제적으로 지급하였다. 그렇지만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한 실질적 2차 피해 발생은 현재까지 증명되지 못했다. 증명된 2차 피해가 없는 상태에서 일괄 10만원씩만 배상한다고 하더라도 3조7550억원의 현금 배상을 해야 한다. 이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를 배상하게 되어 있는 대륙법계 공통의 손해배상법리에 정면으로 저촉된다. 쿠팡의 조정안 불수용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미국 상장사인 쿠팡Inc의 연결 기준 2025년 당기순이익은 약 3030억원이었는데, 1인당 10만원씩, 순이익의 약 12.4배인 총 3조755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쿠팡이 감당할 수 있을까. SK텔레콤의 2025년 당기순이익은 약 3751억원이었는데, 그 6.13배인 2조3000억원을 배상하여야 한다면 엄청난 타격이다. 최근 티빙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티빙이 신고한 피해자 수는 약 1953만명인데, 티빙의 2025년 당기순이익은 약 -893억원(적자)인 상태에서 1인당 10만원씩 배상을 가정할 때 1조9530억원의 손해배상이 어떻게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과도한 보상 총액은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켜 피해는 결국 주주들과 근로자들에게 돌아간다.
과징금도 문제다. SK텔레콤은 약 1348억원, 쿠팡은 역대 최대인 6246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부과받았다. 이 외에 피해자 전원에게 10만원씩만 배상해도 SK텔레콤은 1조3480억원, 쿠팡은 3조7550억원의 현금지출을 해야 한다면 이는 분명 과도한 이중제재가 된다.
미국의 예를 보면 집단소송은 법률대리인의 성공보수 획득을 목적으로 기획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단소송이 제도화되면 변호사로 구성된 기획소송단이 소비자에게 기업의 자발적인 보상계획에 불참을 권유하면서 소송 참여를 권유하게 된다. '무피해(no-injury)' 소송의 남발도 문제다. 손해를 증명할 수 없는 자까지 Opt-out(참여하지 않기로 의사표시를 해야 하는) 방식으로 자동적으로 원고가 되는 이런 방식은 지양해야 하며, 원고가 되기로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한 사람만이 재판에 참여하는 방식인 Opt-in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기업으로서도 어차피 집단소송으로 간다면 자발적 구제 노력을 포기하면서 소송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집단소송의 결과로 법률대리인은 상당한 법률비용을 보전받겠지만 소비자는 결국 10만원 정도의 푼돈을 받을 뿐이다. 법률시장의 확대는 변호사들에는 좋은 일이지만 주주, 근로자, 기업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고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목적을 가진 사법 시스템이 상업화로 전락한다는 의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국외무역장벽보고서(NTE) 및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한국의 징벌적 배상 및 집단소송 확대를 쿠팡 등 미 증시 상장 기업 및 미국계 기업에 대한 비관세 통상 장벽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한국 특유의 강도 높은 형사 고발 문화와 결합하여 한미 FTA상 '투자자 보호 및 무역 투명성' 조항과 충돌하며 외교·통상 마찰로 비화될 우려가 상존한다.
소비자의 신뢰를 잃으면 기업은 생명력을 잃는다. 기업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기업 관련 사고가 터졌을 때 기업 스스로의 자발적 개선 노력에 맡겨 두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이후 소비자 손해가 증명된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춘 소비자단체'가 법원에 해당 행위의 금지·중지를 청구할 수 있는 '단체소송(Verbandsklage)'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 프랑스, 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다. 기업 및 학계와 충분한 교감 없이 또 하나의 졸속입법이 될 집단소송법을 성급히 도입해서는 안 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