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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민연금은 증시·환율 안정기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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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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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규 교수
최창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 증시를 떠받치는 것도, 환율을 방어하는 것도, 특정 정부의 단기 정책 목표를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낸 보험료를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운용해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자산배분은 정치적 고려나 시장 안정 논리가 아니라 장기 수익률과 위험관리 원칙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은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임기 5년 정부의 정책 필요에 따라 흔들리는 기금이 아니라, 세대 전체의 노후를 책임지는 장기 신탁자산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2026년 자산군별 목표비중 조정안과 2027~2031년 중기자산배분안을 의결하면서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20.8%로 높였다. 이는 기존 14.9%에서 5.9%포인트 상향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전략적 자산배분(SAA, Strategic Asset Allocation) 허용 범위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이번 조정은 시장 충격을 완화하려는 취지일 수 있지만,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수단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연금의 운용은 어디까지나 장기 수익성과 위험 분산의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전 세계 주식시장을 하나의 큰 투자 바구니로 보면, 각 나라 주식은 그 나라 증시가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담는 것이 가장 중립적인 배분에 가깝다. 한국 증시의 세계 시가총액 비중은 매우 작은 편이지만,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목표 비중은 20.8%에 이른다. 2026년 4월 말 기준 실제 국내주식 투자 비중도 전체 자산의 25.1%였다. 이는 세계시장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국 편향(home-bias)이다. 장기 노후 자산 운용 원칙상 과도한 자국 편향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 공적연기금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캐나다 연금계획(CPP, Canada Pension Plan), 네덜란드 공무원연금기금(ABP), 노르웨이 국부펀드, 스웨덴과 덴마크의 주요 연기금은 대체로 자국 시장보다 글로벌 분산투자를 중시한다. 이들은 연금기금을 국내 증시 부양이나 환율 안정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가입자의 장기 수익률과 위험분산을 위한 독립적 투자기관으로 운용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국가경제와 연금자산의 위험을 분리하기 위해 국내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해외자산 중심으로 운용한다.

일본 공적연금투자기금(GPIF, 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은 상대적으로 자국 편중이 높은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GPIF의 기본 포트폴리오는 국내채권 25%, 해외채권 25%, 국내주식 25%, 해외주식 25% 구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 증시는 세계 시가총액의 약 6%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한국 증시는 훨씬 작다. 일본의 국내주식 25%도 국제분산 원칙에서 보면 높은 편이지만, 한국 국민연금의 20.8%는 자국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더욱 큰 편중으로 읽힌다. 일본의 사례를 들어 한국의 높은 국내주식 비중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이 증시 안정뿐 아니라 환율 안정 수단으로도 활용돼 왔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원화 약세가 심해질 때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를 체결하거나 연장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용 달러 수요가 외환시장에 주는 압력을 줄여 왔다. 외환당국은 국민연금과 650억 달러 한도의 외환스와프 거래를 2026년 말까지 연장했다. 외환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판단이 환율정책의 하위 수단처럼 취급될 위험이 있다.

물론 환율 급등기에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부담을 국민연금에 반복적으로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원칙은 장기 수익률 제고와 위험 분산이다. 이를 환율 방어 논리로 제약하거나 조정한다면 연금자산 운용의 독립성과 일관성이 훼손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외환당국의 보조금고도, 증시의 안전판도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이미 한국경제 위험에 깊이 노출돼 있다. 노동소득은 국내 경기와 고용 상황에 좌우되고, 부동산 자산도 대부분 국내에 집중돼 있다. 여기에 노후자산인 국민연금까지 국내주식 중심으로 운용되면 국민의 노동소득, 부동산, 금융자산이 모두 동일한 국가위험에 묶인다. 한국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질 경우, 임금 증가율 둔화, 보험료 수입 감소, 국내주식 부진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는 주식시장에는 매도 압력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그 반대편에는 또 다른 비용이 있다. 전체 포트폴리오 안에서 국내주식 비중을 높이려면 다른 자산군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국내채권 비중을 조정하면 채권시장의 핵심 장기 매수자 역할도 약해질 수 있다. 이는 국내 채권 수급과 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4월 기준으로 약 1670조원이나 됐다. 이런 거대 기금일수록 단기 정책수단으로 동원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저출산·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면 국민연금을 국내 증시의 수급 조절이나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수단으로 활용하는 역할을 벗어나 글로벌 분산과 장기 실질수익률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정부의 정책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평생 노후 자산이다. 그 원칙을 재확인하고 재출발해야 한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오스틴대학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은행감독원·금융경제연구소·조사국 선임조사역 근무. 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한국연구재단·KOTRA·한국주택금융공사 비상임이사. 금융감독원 거시건전성분석·한국은행통화정책·기획재정부재정정책 자문위원, 한국EU학회 회장, 현재 한국자유주의학회 회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금융, 거시경제, 화폐금융, 계량경제학 등. SSCI 16편, SCOPUS 1편, 학진등재지 31편 등 다수의 논문. 2024년 국무총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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