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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책임’ 내세웠지만…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곳곳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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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미 기자

승인 : 2026. 05. 17. 10:25

구제급여 공제·소송 부담 커져
인과관계·배상기준 위원회 재량
기업 책임·장기 지원체계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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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제품이 나열돼 있다./연합
국가 책임을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배상체계 전환이 출발선에 섰지만 시행령 세부 기준을 둘러싸고 피해자들의 불만과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국가가 직접 배상에 나선다는 점에서는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추가 피해 인정 범위와 신청 기한, 배상금 산정 방식 등 핵심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17일 정부 등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설명회를 열고 피해자 의견 수렴에 나섰다. 기후부는 오는 10월 8일 시행 예정인 개정 특별법에 맞춰 손해배상 신청 서류와 배상 결정 기준, 건강모니터링 절차 등을 시행령에 담을 계획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4년부터 판매된 제품이 폐 손상 등을 일으킨 사건으로, 2011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를 통해 인과관계가 처음 확인됐다. 이후 피해 신청자 8065명 가운데 6011명이 피해자로 인정됐다.특히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처음으로 국가 책임을 인정하면서 기후부는 기존 '구제급여' 중심 체계에서 국가 주도 '손해배상' 체계로 전환했다.

문제는 이를 두고 잡음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쟁점은 추가 피해 신청 기간이다. 개정법은 기존 피해 인정자는 자동으로 배상 신청자로 간주하지만, 신규 신청자는 법 시행 후 6개월 안인 2027년 4월 8일까지 신청하도록 규정했다.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특성상 수년 뒤 후유증이나 만성질환이 나타나는 사례가 계속 확인되고 있는데 사실상 '종결 시한'을 두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설명회 자료에서도 피해자단체는 미인정·등외 피해자와 신규 질환 인정 범위 확대를 요구하며 면역계·신경계·심혈관계 질환까지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세부 기준을 향후 심의위원회 검토에 맡겼다.

인과관계 인정 역시 논란이다. 개정법은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질환 간 역학적 상관관계가 확인되면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했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사·연구 결과가 필요하다. 문제는 어떤 연구를 인정할지, 어떤 질환까지 포함할지 결정 권한이 기후부와 전문위원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시행령안은 역학조사와 건강모니터링, 독성·임상의학 연구 등을 근거로 인정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지만, 이 또한 정부가 인정한 연구만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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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아시아투데이DB
배상금 산정 방식도 숙제다. 기후부는 시행령안에 유족배상·치료비·간병비·휴업배상·장해배상·위자료 등을 규정했지만, 세부 기준은 국가배상법과 민법 등을 참고해 심의위원회가 정하도록 했다. 반면 피해자단체는 위자료와 간병비 기준을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간병비 지급 기준 역시 현장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령안은 의사 소견과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간병 필요성을 인정하되 중환자실·회복실·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이용 기간 등은 제외하도록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가족이 장기간 직접 돌봄을 제공한 사례가 많은 만큼 가족 간병 역시 도시일용노임 기준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의 구조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법은 국무총리 소속 배상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법관·변호사·정부 측 인사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시행령안 역시 조사판정전문위원회와 재심의전문위원회를 각각 최대 50명, 30명 규모로 두도록 했지만 피해자 추천 전문가의 실질적 참여권 보장은 명확하지 않다.

금한승 기후에너지환경부 제1차관은 설명회에서 "그동안 아픔과 고통을 겪은 피해자와 유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법 시행일까지 하위법령 개정을 완료하고 배상 전환과 피해자 전생애 지원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배상기준과 기업 책임 범위, 장기 지원체계 등이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우려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구제법에서 배상체계로 바뀌었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어느 수준까지 책임지고 기업 책임을 얼마나 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이 보이지 않는다"며 "기존 구제체계는 기업 분담금으로 치료와 생계를 지속 지원하는 구조였지만, 배상체계는 위원회 결정 이후 피해자가 만족하지 못하면 사실상 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상 기준과 기업 책임 범위가 여전히 불명확한 데다 신청 기간까지 6개월로 제한되면서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기대보다 불안감이 훨씬 큰 상황"이라며 "국가가 '배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 피해자 입장에서는 기존 구제체계보다 더 후퇴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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