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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의 중국 정치·산업 四季] 5.1절 소비의 착시와 한국 기업의 B2B 딥테크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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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13. 13:33

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동국대 겸임교수
중국에서 5.1절(노동절)은 국경절, 춘절과 함께 내수 소비의 폭발력을 가늠할 수 있는 3대 연휴로 꼽힌다. 수억 명의 인구가 대륙을 횡단하며 지갑을 여는 이 거대한 소비의 용광로는 중국 실물 경제의 체감 온도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시금석이다. 과거 필자가 LG전자 광저우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 5.1절 연휴는 1년 중 가장 치열한 오프라인 판매 절기 중 하나였다. 당시 중국의 신흥 중산층은 한국의 프리미엄 백색가전과 평면TV를 소유하고자 했으며, 주요 가전 매장들은 연일 최고 매출 기록을 경신하곤 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의 5.1절 풍경은 과거의 기억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올해 노동절 연휴 기간 중국의 하루 평균 출입경 인원은 전년 대비 3.5% 증가한 226만 명을 기록했고, 신흥 관광지 방문객은 60% 이상 급증하며 대규모 인구 이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광 호황과 경험형 소비의 팽창 이면에는, 자국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어 외자 기업의 입지가 사라진 실물 소비재 시장의 구조적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중국 내수 시장의 맹목적 가격 경쟁인 '내권(內卷·출혈경쟁)'의 파괴력을 현장에서 가장 먼저 체감했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샤오미(Xiaomi), 하이센스(Hisense) 등 중국 로컬 기업들은 거대 자본과 수직계열화된 인프라를 무기로 극심한 단가 인하 경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 LG전자의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3년 2분기 사실상 0%로 추락했고, 2020년 기준 TV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마저 0.49%라는 별 의미 없는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붕괴되는 것을 확인한 경영진은 점유율 방어 대신 핵심 유통망에서 철수하는 자산 경량화를 단행했으며, 그룹은 베이징 트윈타워를 매각하여 미래 투자를 위한 실탄을 확보했다.

LG전자보다 10년을 더 버티며 기회를 모색했던 삼성전자마저 생태계 장벽을 넘지 못하고 최종 결단을 내렸다. 2026년 5월 6일, 삼성전자는 중국 본토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 모든 가전제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13년 시장 점유율 20%에 육박하며 딜러들이 줄을 서게 만들었던 선도자가 냉장고 점유율 0.41%를 끝으로 물러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격 경쟁의 패배가 아니라 속도와 생태계 싸움에서의 격차였다. 중국 본토 브랜드가 고객 수요를 반영해 신제품을 출시하는 데 평균 3개월이 걸리는 반면, 삼성은 6~8개월이 소요되며 속도전에서 치명적인 차이를 보였다. 정부(共)가 내수 진작책으로 소비의 판을 깔아도 혜택은 로컬 기업(供)들이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한국 기업의 B2C 시장 철수는 도태가 아니라 수익성이 악화된 시장에서 발을 빼고 B2B 딥테크(Deep Tech) 성장 동력에 자본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주요 오프라인 가전 매장에서 철수해온 LG전자는 전장(VS) 사업본부를 전면에 내세워 2026년 1분기 기준 글로벌 전체 매출의 36%를 B2B에서 창출하는 솔루션 기업으로 변모했다. 한때 완제품 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밀어냈던 BYD(비야디)나 지리자동차(Geely) 등 중국 로컬 완성차 메이커들이 수출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LG전자는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핵심 두뇌 부품을 공급하며 생태계를 주도하는 '티어0.5(Tier 0.5)' 통제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 역시 중국인의 장바구니에서는 빠져나왔지만, 투자액의 90% 이상은 첨단 제조 및 반도체 등 중국 제조업의 기저(底層)에 투입되었다. 삼성이 전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15%를 담당하는 시안(西安) 공장 등에 역량을 집중한 결과, 2026년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만 글로벌 연결 기준 53.7조 원을 거둬들이며 전사 이익의 94%를 창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2026년 5.1절 연휴의 소비 지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범용 B2C 시장의 회복을 기대할 때가 아니다. 중국 밸류체인 내부로 파고들어 현지 생태계가 대체할 수 없는 'B2B 딥테크 인프라'를 장악하는 실효적 생존 전략을 완성해야 한다. 

김동영(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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