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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캐나다 북부 온타리오의 겨울 풍경을 상상해 보자. 광활한 원시림과 끝없이 눈 덮인 벌판, 그 사이를 잇는 건 오직 가느다란 철길뿐. 그곳에는 철도 노동자, 사냥꾼, 광부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학교는커녕 이웃집조차 아득히 떨어져 있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문명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캐나다북부철도(CNR)는 이 아이들을 위해 혁신적이지만 눈물겨운 대안을 내놓게 된다. 화물차 내부를 개조한 교실을 기차에 매달아 북부의 간이역마다 배움을 배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학교는 카프리올(Capreol)에서 폴리엣(Foleyet)까지 240㎞ 구간을 오갔다. 이것이 '바퀴 달린 학교'의 시작이었다. 박물관으로 보존된 15089호 차량안으로 들어가면, 좁고 긴 복도를 따라 놓인 작은 책상들, 벽면을 가득 채운 흑판, 구석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물 난로. 그리고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들. 이 좁은 공간이 한때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전부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학교가 전 세계 교육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한 사람, 프레드 슬로먼(Fred Sloman)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1926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39년 동안 흔들리는 기차 칸을 교실이자 집으로 삼았던 그는 이 좁은 화물차에서 아내 셀라와 함께 39년 동안 생활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차량의 절반은 교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슬로먼 가족의 살림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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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기차는 그 역에 머물며 수업을 진행했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다음 방문 때까지 풀어야 할 과제를 한 보따리씩 안겨주었다. 슬로먼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은 세상에서 잊히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본질임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했다.
박물관에는 요즘의 학교처럼 화려한 멀티미디어 기기도, 안락한 의자도 없다. 하지만 이곳의 교구들은 하나하나가 예술품보다 더 아름답다. 손때 묻은 지구본에는 지금은 사라진 국가의 이름들이 적혀 있고, 낡은 타자기는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두드렸던 희망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벽에 걸린 흑판에는 누군가 분필로 정성스럽게 쓴 문장들이 남아 있다.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
이 좁은 화물칸에서 아이들은 지도 너머의 세상을 꿈꿨고, 슬로먼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난과 고립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었다. 이곳은 교사의 열정과 학생의 갈망이 만나는 그 '접점'이 교육의 전부임을 묵직하게 웅변한다. 클린튼의 이 작은 박물관을 찾는 이들 중에는 유독 현직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100년 전의 낡은 책상 앞에 앉아 한참 동안 창밖을 내다보고는, 방명록에 '내가 왜 교사가 되려 했는지 다시 깨달았다'는 나름 절절한 고백을 남겼을 거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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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먼 선생은 아이들이 학교에 올 수 없다면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실천했다. 그가 머물던 좁은 침실과 낡은 책상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내어준 '헌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도로가 뚫리고 통학버스가 보급되면서 '바퀴 달린 학교'는 그 소임을 다하고 멈춰 섰다. 하지만 그 학교를 거쳐 간 많은 아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신들의 몫을 해내며 삶의 철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들은 기억한다. 숲속 깊은 곳까지 자신을 찾아와 주었던 초록색 기차와, 환한 미소로 자신들을 기다리며 내걸었던 슬로먼 선생의 등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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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물관은 현재 슬로먼 기념 공원(Sloman Memorial Park)에 자리해 있으며, 매년 5월 18일 빅토리아데이 주말부터 9월 말까지, 목요일부터 일요일(오전 11시~오후 4시)에만 문을 연다. 입장료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니, 받은 감동만큼 지갑을 열면 된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