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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방망이’로 이룬 17년 만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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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빈 기자

승인 : 2026. 03. 10. 08:01

'세계 1위' 일본 상대로 '6득점'
체코에 11득점, 투수진은 불안
대만에 5실점 '단두대 매치' 패
호주에 '7득점 성공'하며 극적 진출
마운드는 마지막판에서 '투혼' 발휘
단 2실점으로 '극적 시나리오' 완성
WBC 8강 진출에 기뻐하는 김도영-안현민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른 김도영(왼쪽 위)과 안현민(오른쪽)이 호주를 꺾고 8강 진출을 확정하자 문현빈을 올라타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
한국 야구가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8강 토너먼트로 진출한 건 17년 만의 일이다. 1회 대회 3위, 2회 대회 준우승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한 한국 야구는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관하는 '프리미어12' 우승 이후 굵직한 국제대회서 이룬 첫 쾌거다. 그간 한국 야구는 일본과 대만, 호주, 멕시코, 이스라엘, 네덜란드에 막히며 축구로 따지면 월드컵 격인 토너먼트 무대인 16강에도 들지 못했다. 한국은 2라운드가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로 날아가 WBC 결선 토너먼트에 참가한다.

이번 대회에서 8강에 성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조별리그 통과는 힘들었다. 한국계 빅리거까지 수혈하며 전력을 강화했지만 가까스로 '소설 같은' 시나리오로 8강에 올랐다. 첫판인 최약체 체코를 잡고, 난적 호주를 막판에 잡아내며 처음과 끝이 모두 좋았다. 비록 숙명의 아시아 라이벌인 일본과 대만에게 연거푸 지며 탈락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했다. 한국은 대만과 호주가 각각 2승 2패로 물고 물리며 실낱같은 희망을 되살렸다. 당초 극강인 일본이 손쉽게 1위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 속 2위는 '한국·대만' 2파전이 아닌 호주를 포함한 3파전으로 진행됐다.

호주는 생각보다 탄탄한 전력으로 대만을 3-0으로 영봉승을 거두더니, 일본을 맞아 3-4으로 아쉽게 지는 등 저력을 발휘했다. 반면 한국은 체코전 승 이후 일본전(8실점)·대만전(5실점)에서 떠안은 2패로 상당히 불리한 조건을 전제로 단두대 매치를 벌였다.

호주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단 3점만 내면 무조건 8강에 나설 수 있었다. 실점은 무관했다. 전날 투수 소모가 컸던 호주 입장에선 타자들이 화력을 뿜으며 한국 마운드를 두들기길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호주는 매경기마다 홈런을 앞세워 장타력으로 승부를 본 팀인 만큼 마운드가 약한 한국의 열세가 예상됐다.

한국 투수진은 체코에 4실점, 일본에 8실점, 대만에 5실점 하며 흔들렸기에 호주를 단 2점 이하로 막는 게 유일한 임무였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타선도 5점차 이상의 대승을 거둘 수 있게 화력 지원을 했어야 했다. 승패가 동률인 팀끼리 이닝 당 실점률을 따지기 때문에 이미 대만에 5실점 한 한국은 호주를 단 2점으로 막아야 했다. 반면 호주는 대만에 무실점 승리를 거뒀기에 한국을 상대로 3점만 내도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토너먼트에 올라갈 수 있었다.

반면 대만은 한국에 4실점, 호주에 3실점 했기에 한국이 3경기에서 총 8실점 이상을 기록했어야 했다. 대만전에서 이미 5실점을 했기에 한국은 호주를 단 2점 안으로 틀어 막아야 했던 배경이다. 반면 호주는 대만전 0실점이 대단한 무기가 됐다. 한국에 최소 5점 이상을 내줘도 1점을 뽑아도 자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조건이었다. 5-0, 6-1, 7-2로만 지지 않으면 됐다. 3-18 '7회 콜드게임'으로 져도 호주는 8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호주는 딱 필요한 3점에 한 점 모자란 2점을 기록하고 짐을 쌌다.

◇문보경은 '국제용' 타자… KBO 김도영·안현민, MLB 이정후·존스·김혜성 맹활약

한국은 믿었던 타선이 터졌다. 정말 필요한 5점차 대승을 이끈 주역은 대회 1라운드 MVP급 활약을 펼친 LG 트윈스의 4번 타자 문보경이었다. 문보경은 이날 홈런과 장타를 쏘아올리며 3안타를 터뜨렸다. 필요할 때마다 장타를 뽑아내며 한국 마운드에 힘을 실었다.

이날 경기는 당초 LA 다저스의 내야수 김혜성과 트리플A 홈런왕 출신의 셰이 위트컴(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주전 내야수가 벤치에서 시작했다. 김혜성은 일본전 동점 투런포를 제외하면 중요한 순간 안타를 치지 못했고, 위트컴은 체코전 2홈런 포함 3안타 외엔 방망이가 차갑게 식었다. 이에 그간 지명타자로 나섰던 김도영이 위트컴의 3루에 위치하고, 문보경이 1루를 채웠다. 2루수도 지난해 LG의 통합우승 주역 신민재가 김혜성을 대신했다.

신민재는 중요한 순간 타점을 올리지 못했지만 감각적인 내야 수비를 보여주며 승리에 기여했다. 위트컴도 대타로 나와 승부의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선두 타자 2루타를 경기 후반 터뜨리며 방망이 끝 감각을 조율했다. 7회초 위트컴에 이은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결국 8회말 호주에 1실점하며 쫓기긴 했지만 분위기를 살리는 한방이었다. 9회초까지 2-6 상황서 마지막 남은 공격 기회를 무득점으로 끝내면 마이애미가 아닌 한국행 짐을 싸야 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기어코 한 점을 짜냈다. 상대 실책으로 이어진 1사 1, 3루 상황에서 초구를 받아쳐 외야 깊숙한 곳에 타구를 날린 안현민(kt wiz)가 결승 희생플라이 타점의 주인공이었다.

경기 초반 문보경이 기선을 잡고, 이정후와 김도영이 달아나는 적시타를 뿜었으며, 안현민이 결승 타점을 기록하는 등 타선이 골고루 활약했다. 그 중 문보경은 이번 대회 타점 기계로서 또 4타점을 적립하며 강력한 1라운드 MVP 후보에 올랐다. 문보경은 총 4경기 동안 총 11타점으로 전체 참가국 20개국 출전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10타점 이상을 올리고 있다.

◇류지현 "내 인생 경기… KBO 10개 구단 협조가 합쳐진 결과"

한국 야구가 17년 만에 WBC에 진출한 만큼 류지현 대표팀 감독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류 감독은 "굉장히 어려웠던 1라운드였다.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 임하는 자세, 진정성이 한데 모여서 이런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며 "오늘 경기 전부터 '쫓겨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선취점이 일찍 나온 것이 저희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경기 흐름을 가져갈 수 있는 이유가 됐다. 9회초에도 꼭 점수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선수들 집중력과 염원이 한데 모였다"고 짚었다.

이어 "조병현(SSG 랜더스)도 마지막에 1.2이닝을 잘 막아줬고, 이정후(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 역시 9회말 수비에서 어려운 타구를 잘 잡아내 줬다"며 갑자기 등판한 노경은(SSG)에겐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노경은은 선발 손주영(LG)가 예상치 못한 팔꿈치 통증으로 1회만 마치고 강판돼 긴급히 마운드에 올라 2이닝을 무실점으로 완벽히 막아냈다. 류 감독은 "오늘이 저의 '인생 경기'였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단 전체, KBO와 10개 구단 협조가 합쳐진 결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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