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도 유지 규정, 현실은 30도 넘어
"구조적 한계 있지만 개선 노력 중"
|
카페를 운영하는 이가은씨(40)는 "여기서 하루 종일 장사하는데, 특히 늦은 저녁이랑 새벽이 가장 덥다"며 "그때는 조금이나마 가동되던 에어컨도 안 나오니까 완전 찜통"이라고 토로했다.
상가를 조금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배어났다. 천장 곳곳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지만 노후돼 바람이 매우 약했다. 소상공인들은 선풍기를 두세 대씩 틀어놓고, 이동형 냉방장치에 등을 대거나 손수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꽃집 앞을 지나자 시든 꽃들이 눈에 띄었다. 꽃집을 운영하는 황희열씨(50)는 "더위 때문에 꽃이 상해서 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꽃은 온도가 중요한데, 너무 더우니까 금방 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옷가게, 화장품가게, 빵집, 식료품가게 등이 일자로 늘어선 을지로3가역 내부 온도는 30.3도. 상가를 둘러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 모씨(54)도 "가게 주인이 이렇게 땀 흘리면서 있는데, 손님들은 오죽하겠냐"며 "상권 살리려고 홍보물 뿌려도 상가 자체가 더우니 손님이 와도 금방 간다"고 하소연했다.
더위는 상품에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 모씨(60)는 판매대에서 치운 녹은 초콜릿을 꺼내 보였다. 손으로 집자마자 그대로 뭉개지는 초콜릿. 완전히 판매 불가 상품이었다. 그는 "너무 더우니까 냉장고 고장이 잘 나고, 음식 상했다고 바꿔 달라는 손님도 꽤 있다"며 "자정까지 운영하는데, 19시가 넘어가면 에어컨도 꺼진다. 그 땐 정말 체감온도가 40도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옥수역 환승통로에서 양말을 판매하는 김영란씨(55)도 "너무 더우니까 손님들이 물건도 잘 안 살펴보고 지나간다"고 토로했다. 이날 옥수역 내부 온도는 34도로 취재한 지하철역 중 가장 높았다.
|
이상기후로 인한 고충은 고스란히 매출 피해로 연결됐다. 을지로입구·을지로3가역 인근 지하상가 15곳을 조사한 결과, 여름철 평균 매출은 전년 대비 대략 27.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카페 28.3% △악세서리·잡화점 25% △꽃집 30% △옷가게 30% △양복점 30% △식당 20% 감소했다. 특히 일부 옷가게와 카페는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무더위로 인해 손님들이 오래 머물지 않아 매출 감소 폭이 더욱 커진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에 따라 공공기관 냉방설비 가동 시 평균 28℃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비냉방역사나 노후역사는 30도가 훌쩍 넘어 '찜통 역사'가 되는 게 현실이다. 서울지하철 비냉방 역사는 에어컨 설치가 불가한 지상역 25곳과 개통된 지 오래된 지하역 26곳 등 총 51개소다. 이곳들은 역 구조와 개별 상가 권리 상 물리적으로 에어컨 설치가 어렵다. 공사 관계자는 "노후역사나 지상역사의 경우 구조적으로 냉방 설치가 어렵고, 상가도 개별 관리라서 일률적으로 냉난방시설을 설치하기 힘들고, 설치해도 비용이 많이 든다"고 털어놨다.
한편, 서울시는 비냉방 지상역사 내 고객대기실을 이달 중 4개역 4개소 '동행쉼터' 추가운영을 시작으로 19개 역사 33개소로 확대한다. 앞서 오세훈 시장은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달 비냉방 역사를 찾아 "장기적으로 노후 지하역사에 대해선 환경개선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도 "을지로입구역과 을지로3가역 상인회와 소통하며 올해도 '을지아랫길 쉼터'에 냉방장치를 설치해 일부 개선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인들이 장시간 머무는 상가 환경을 개선하려면 전체를 개선해야 한다"며 "환경 개선비가 내년 서울시 사업 예산에 반영되도록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하역사는 냉방시설 설치 등 전반적인 노후환경개선에 역사당 약 6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시는 내년 역사개선사업에 대한 국비를 신청하고 예산 확보를 통해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