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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자유시장 경제헌법에서 점점 멀어지는 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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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07. 17:34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여야가 합의한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제 8단체와 경영계는 재고를 거듭 요청했지만, 국회 여당과 야당은 몇 안 되는 기업인의 표보다 압도적으로 표가 많은 소액주주들에게 앞다퉈 구애했다.

먼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 외에 주주가 추가됐다. 본래 이사의 충실의무란 회사 재산을 관리하는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사익을 도모하기 위해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할 의무다. 그런데 이사는 주주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주주에게 충실의무를 부담할 계기가 없다. 지금 논의는 이와 같은 고유의 충실의무가 아니라, 한국에서 재창조된 충실의무로서, 지배주주를 제외한 일반 주주에게 손해될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의 이사 충실의무는 한국 외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문제는 이사가 아니라 지배주주다. 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배주주에게 비례적이지 않은 이익(non-ratable)이 부여되는 반면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를 교정하고자 2011년 상법 개정 시 제398조에 '주요주주의 자기거래'를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예컨대 A와 B 두 회사의 주요주주가 A회사에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고 B회사에는 적은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하자. A와 B 두 회사를 합병하면서 A회사의 주가를 높게 평가하고 B회사의 주가를 낮게 평가한다면, 그 지배주주와 A회사의 주주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B회사의 일반 주주는 매우 불리하게 된다. 이러한 거래는 A, B 양 회사의 주요주주의 자기거래가 된다. 이때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주주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처럼 지배주주의 비례적이지 않은 이익 편취행위를 제어할 규정이 이미 상법에 있다. 만약 이 규정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이 규정을 보완하면 될 일인데, 국회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 규정인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을 개정했다. 이처럼 무관하고 엉뚱한 규정을 개정해, 이사가 계약관계가 없는 자들에게까지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법 체계만 망가뜨렸다.

개정된 조문을 보면 이사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사들은 이사회와 총주주의 의사 결집의 장(場)인 주주총회를 거친 사항을 집행하며, 사단법인인 회사는 주주들의 단체이니 주주 보호는 당연한 것이고 새로운 의무부담이 아니다. 공평의무 역시 이사는 회사법의 대원칙인 주주평등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주주들은 소송비용을 생각하면 소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적을 것이고, 법원도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결의된 사항을 집행할 뿐인 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까지 부담하라고 판결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며, 소송은 대부분 무익할 것으로 본다.

그렇더라도 충실의무 법리에 무지한 세력들이 위협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지배주주가 비례적이지 않은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 대부분 일정 비율의 지분을 가진 주주가 제기하는 대표소송으로 진행되어 왔고, 이사는 대부분 경영판단원칙의 보호를 받아 면책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개정 상법 문구상 개별 주주가 개별 이사를 상대로 직접소송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잘잘못을 떠나 어떻든 소가 제기되면 이사는 큰 피해를 입는다. 상법에 신속히 경영판단원칙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차제에 상장회사의 독립이사(기존 사외이사) 의무 선임 비율이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확대되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독립이사는 3명 이상이면서, 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변동이 없다. 현재 대부분의 사외이사(독립이사)는 감사위원이 되는 것이 관례다. 문제는 이번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시 3%룰을 확대 적용하여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과 합산하여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종전에는 이러한 제한이 사내이사인 감사위원회 위원의 선출 시에만 적용되었으나 개정법은 모든 감사위원회 위원 선출 시에 이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번 상법 개정 중에 감사위원 선임에 대주주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드는 이 부분이 가장 반시장주의적이다. 감사위원은 감사이기 이전에 이사이다. 이는 기업인의 이사회 구성권을 일정 부분 박탈하는 것으로, 대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인데, 좀체 사라지지 않고 계속 강화되고만 있다. 자유시장주의 국가 어느 나라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주주행동주의 활동 중 주주제안 부분을 보면 임원선임 주주제안이 가장 많고, 정관개정 제안이 그다음이다. 정관개정은 정관에 집중투표 의무화 규정을 두자는 제안이다. 임원선임 주주제안이나 정관개정 주주제안 모두 이사 자리를 달라는 것이다. 한국의 행동주의자들도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해외 행동주의자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한국 대기업에 이사이면서 감사위원 자리를 요구하면 대책이 없다. 기업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립이사를 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수로 임명하더라도 감사위원은 딱 3명만 임명하게 될 것이다.

원죄는 상법학자들에게 있고, 정치인들을 탓할 것은 없다. 1961년 한국 상법을 최초로 제정할 때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상법제정위원회 위원이 되어 감사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을 만들었다. 제정상법은 1962년 공포되어 196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것이 장장 63년 동안 한국 기업을 짓누르면서 점점 강화되고 있다. 지금 반자유시장주의적 규정이 계속 경제 헌법인 상법에 들어오고 있는 것도 상법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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