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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사이트] 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의 도시 재생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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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5. 24. 21:24

축구장이 도시를 살릴 수 있을까?
1000억엔, 전액 민간 투자… 조선소 터에 들어선 새로운 도시의 구조
팬이 아닌 사람도 365일 머무는 곳, PEACE STADIUM이 만든 지역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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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중심에 들어선 스타디움시티 복합구역. 기존 산업 부지를 전면 재구성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2024년 가을, 일본 나가사키의 중심부에 문을 연 '스타디움시티'는 축구 전용 구장 피스 스타디움(PEACE STADIUM)을 중심으로 아레나, 호텔, 쇼핑몰, 오피스까지 결합한 복합도시다. 단지 새로운 경기장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이 도시는 일본 내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로 주목받는다. 그리고 그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주체는 나가사키에 본사를 둔 유통기업 자파넷(Japanet)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텔레비전 홈쇼핑 기업이자, 지역 기반의 중견 그룹이기도 한 이 기업은 2017년 위기에 처한 J리그 구단 'V-파렌 나가사키'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스포츠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단지 구단 운영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그 자체를 설계하는 데까지 손을 뻗는다. 구단 인수 직후, 도심 한복판에 남겨진 미쓰비시 조선소 폐공장을 주목했고, 이 부지에서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구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약 7년 후 자파넷은 전액 민간 자본으로 총사업비 1000억 엔(약 1조 원) 규모의 스타디움시티를 완성시켰다. 이는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다. 대부분의 스포츠 인프라는 지방정부가 주도하거나, 대기업이 공공기여의 형태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가사키는 달랐다. 자파넷은 도시와 상권, 커뮤니티를 자본과 아이디어로 묶어 민간이 통합적으로 개발·운영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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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디움시티 푸드홀.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한 상업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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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공간과 필드가 맞닿아 있는 구조. 누구나 경기 없는 날에도 이곳을 찾을 수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그렇다면 이 도시는 실제로 지역에 무엇을 바꾸었을까?

우선 구조적으로 달라졌다. 스타디움시티는 JR나가사키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중심 상업지에 위치해 있다. 과거 조선업의 쇠퇴와 함께 장기적으로 비어 있었던 산업 부지가 경기장과 아레나, 호텔, 상업시설, 오피스 단지로 채워졌다. 이 변화는 단순한 건물의 전환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전환이기도 하다. '제조업→서비스 산업'으로의 지역 경제 중심축 이동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관광과 소비를 중심으로 한 신경제의 출발점이 된다.

둘째, 사람의 흐름이 달라졌다. 자파넷은 이 공간이 연간 약 850만 명의 유동인구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성은 치밀하다. 축구 경기뿐 아니라 농구 경기(실내 아레나), 대형 콘서트, 퍼블릭뷰잉, 스포츠 체험, 푸드 마켓 등 주말마다 이벤트가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다. 특히 경기장이 없는 날에도 스타디움 내부 일부를 개방하고, 푸드홀과 상점가를 운영하면서 '365일 작동하는 공간'이 된 점은 기존의 정적 시설과 완전히 다르다.

셋째, 지역 사회와의 접점이 달라졌다. 스타디움시티는 단순한 대규모 개발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생활 공간이 되도록 설계됐다.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키즈존, 노인들이 족욕을 즐길 수 있는 온천 스파, 대학 강의실과 공유 오피스, 지역 상권과 연결된 장터 이벤트까지.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도 매일 이곳을 찾을 수 있는 이유가 공간 곳곳에 있다. 심지어 이 공간은 재난 시 방재 거점으로도 활용된다. 내진 설계는 물론, 자체 발전 설비를 갖추고 있어 유사시에는 시민 대피소로 전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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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내 좌석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는 시민. 이곳은 단지 관람이 아닌 생활이 펼쳐지는 장소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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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디움 투어에 참여 중인 방문객들. 관객과 선수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최소화된 구조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다. 자파넷은 단지 경기장과 팀 운영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다. 호텔, 상업시설, 오피스에서 발생하는 임대 수익과 소비 매출, 그리고 다양한 스폰서십과 명명권 계약이 고정 수입을 뒷받침한다. 예컨대 경기장 명칭인 'PEACE STADIUM Connected by SoftBank'는 통신 대기업 소프트뱅크와의 제휴로, 경기장 전역에 5G 네트워크가 깔리고 캐시리스 결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스마트 인프라가 단순 기술이 아니라 '관객 경험의 접점'으로 작동한다.

그렇다고 이 실험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개발 초기에는 "축구장에 호텔을 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 "지방도시에 1천억 엔을 투입해 회수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았다. 지방정부와의 조율, 조선소 부지의 토양 정화 등 현실적인 난관도 컸다. 하지만 자파넷은 이 모든 과정을 '민간이 직접 설계하고 직접 책임지는 개발'로 이끌었고, 개장 6개월 만에 3백만 명이 넘는 누적 방문객을 기록하며 반신반의하던 지역 언론의 평가도 변했다.

스타디움시티가 만들어낸 효과는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나가사키시 발표에 따르면 개장 이후 지역 내 음식점, 숙박업소의 주말 매출이 평균 20~30% 증가했고, 역세권 빈 점포에 신규 입점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지 대학생들의 취업 희망 기업으로 '리저널 크리에이션 나가사키'(스타디움 운영사)가 상위에 올랐다는 보도도 있었다. 지방도시에서 기업이 만들어낸 희소한 자부심이다.

이제 과제는 다음 단계다. 개장 이후의 성공이 일시적인 붐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도시가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곳'으로 작동해야 한다. Japanet은 스타디움시티 2단계 계획으로 청년 창업지원 공간, 야외문화광장, 국제회의 유치 등을 검토 중이다. 나가사키시는 스타디움시티를 기점으로 도시 순환버스 노선을 확대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 인프라도 강화하고 있다. 공간은 만들어졌고, 이제 그 안에 담길 시간과 사람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스타디움은 단지 경기를 보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출근길이고, 누군가에게는 데이트 코스이며,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쉬는 벤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파넷 경영진이 개장식에서 밝힌 이 한 마디는, 그들이 꿈꿨던 도시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스타디움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PEACE STADIUM은 그렇게, '사람을 중심에 둔 도시'를 상상하고 있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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