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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사이트] ‘도심 속 5m’ 축구가 일상이 되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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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5. 25. 07:00

팬과 선수를 잇는 최단 거리, 호텔과 경기장을 통합한 일본 최초의 전용구장
관람을 넘은 체험, 일상을 품은 공간… 스타디움이 도시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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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홀에서 바라본 PEACE STADIUM과 호텔 전경. 경기장과 식음 공간, 숙박시설이 수직으로 결합된 구조로, 관람과 체류, 소비가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진 상부에 보이는 와이어 라인은 관람객이 경기장 상공을 가로지르며 체험할 수 있는 집라인 설비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도시의 중심에 축구장이 들어섰다. 정확히는, 도시가 축구장을 품었다. 2024년 가을, 일본 나가사키에서 문을 연 피스 스타디움(PEACE STADIUM)은 단지 축구 경기장이 아니라 도시 구조에 대한 상상력의 전환점이 된다. 육상트랙이 없는 사각형의 전용 구장, 경기장을 둘러싼 호텔과 상업시설, 그리고 경기장 위를 가로지르는 집라인까지. 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는 공간, 체험, 일상의 구획을 재편하는 전례 없는 실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단 하나, 축구가 있다.

피스 스타디움은 나가사키 연고 프로축구단 'V-파렌 나가사키'의 새 홈구장이자, 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 프로젝트의 핵심 공간이다. 도심 한가운데, 과거 미쓰비시 중공업 조선소 부지였던 장소에 약 2만석 규모의 축구 전용 경기장이 세워졌다. 가장 큰 특징은 경기장 설계의 방향성이 '경기'가 아니라 '관객'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의 최단 거리는 약 5m. 특히 1층석은 필드와 거의 같은 높이에 배치되어 선수와 팬이 동일한 시선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구조다. J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짧은 거리이며, 관중은 선수의 몸짓과 숨소리, 시선까지 고스란히 공유하게 된다. 전용 구장의 진가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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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STADIUM의 1층 관중석. 일부 좌석은 필드와 단 5m 거리에서 별도의 펜스나 울타리 없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선수와 관객이 같은 시야에서 호흡하는 밀착형 구조를 경험할 수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이러한 '밀착감'은 단순히 기술적 연출이 아니다. 스타디움 전체가 '누구나 경기의 일부가 되는 장소'로 설계돼 있다.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스탠드 상부에 자리잡은 호텔이다. 14층 건물 전체가 숙박 시설로 쓰이며, 일부 객실은 창을 열면 필드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호텔 침대에 누운 채 경기장을 내려다보거나, 발코니에서 잔디 위의 선수들을 바라볼 수 있다.

일본 축구장 최초의 '스타디움 뷰 호텔'이라는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 더 이상 '외부에서 경기장을 보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경기장을 경험하는 존재'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경기장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울타리 안이 아니라 일상의 한 조각이 된다.

호텔 내부에도 도시적 실험이 숨어 있다. 경기장에 접한 2층 푸드홀이 대표적이다. 유리창 너머로 필드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구조. 경기 당일이 아니더라도 호텔 투숙객이나 시민 누구나 이 공간을 찾을 수 있다. 필드는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경관'으로 존재한다. 일상 속에 녹아든 스포츠의 풍경, 그것이 나가사키 스타디움시티가 지향하는 공간의 이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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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서 필드를 바라보는 구조. 투숙객은 일상 속에서 경기를 경험한다. 침대에서 직접 경기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는 일본 최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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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STADIUM의 집라인 체험 구역. 관람객은 경기장 상공을 활강하며 색다른 시점을 경험할 수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PEACE STADIUM의 경험은 이 지점에서 또 한 번 확장된다. 경기장 상공에는 '집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14층 높이에서 반대편까지 와이어를 타고 하강하는 체험형 시설로, 관람객은 공중에서 필드를 가로지르며 스타디움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조망하게 된다. 스포츠 관람 시설에서 모험 체험 콘텐츠까지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공간은 더 이상 스포츠 시설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즐길 수 있는 체류형 콘텐츠의 하나로, 이 집라인은 실제로 경기 없는 평일에도 운영된다.

이러한 설계는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철학에서 출발했다. 스타디움시티를 개발한 자파넷 그룹은 "스포츠 팬이 아니어도 365일 찾게 되는 공간"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공간을 디자인했다. 따라서 필드에 발 딛지 않는 날에도 관객이 머무를 이유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경기장 안팎에서 운영되는 팀 숍, 어린이 체험 공간, 지역 음식 전문점, 캐릭터 객실층, 족욕장이 있는 온천 스파에 이르기까지 피스 스타디움은 단지 축구의 공간이 아니라, 하루를 보내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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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7층 로비에서 바라본 PEACE STADIUM 내부 전경. 객실뿐 아니라 공용 공간에서도 경기장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투숙객 누구나 일상 속에서 축구를 가까이 경험할 수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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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연출이 적용된 PEACE STADIUM. 경기장 전체가 퍼포먼스와 이벤트 무대로 작동한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공간이 도시와 연결되는 방식 또한 섬세하다. 경기장의 관중석에는 'PEACE'라는 문자가 좌석 패턴으로 새겨져 있다. 이는 평화의 도시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동시에, 스타디움 공식 명칭인 '피스 스타디움 커넥티드 바이 소프트뱅크(PEACE STADIUM Connected by SoftBank)'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명명권 파트너인 소프트뱅크는 5G 네트워크를 경기장 전역에 설치하고, 경기장 앱을 통해 실시간 영상 리플레이, 주문, 좌석 안내, AR 서비스 등 관람자 중심의 '스마트 관람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통신 기술이 아니라, 공간과 사용자 간의 접점을 넓히는 시도이며, 관객이 경기와 '연결'되는 감각을 한층 더 밀도 있게 만든다.

이처럼 나가사키 피스 스타디움은 단지 '잘 만든 경기장'이 아니다. 공간 설계, 디지털 기술, 일상적 풍경의 재편, 관객 체험의 확장까지 이 경기장은 '축구 전용 구장이 도시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제시한다. 경기장 중심의 도시재생이라는 커다란 비전 속에서, 관객의 시선과 발걸음, 그리고 하루의 감각을 정교하게 설계한 실험 공간. 도심 한가운데서 축구가 일상이 되는 거리, 바로 이 5m에서 도시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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