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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실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세계사적 근대화 흐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쇄국적 태도를 고수했다.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으로 발전한 소중화주의는 서구 문물을 거부하며 근대적 개혁 기회를 상실했다. 시대적 흐름을 오독(誤讀)한 조선은 국력 쇠퇴와 망국의 비극적 결과를 자초했다.
오늘날의 비핵화 맹신론과 소중화사상은 위험할 정도로 닮은 꼴이다. 이들의 사상 체계는 현실을 이념적 틀에 맞추려는 경직된 사고방식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후자가 중화 문명의 우월성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세계 정세 변화를 직시하지 못했듯이, 후자는 핵 비확산이라는 이상에 집착하여 안보 현실을 외면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글로벌 안보환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태로운 격변기에 진입했다. 미국은 핵전력 현대화에 1조 7천억 달러를 투입하고, 중국은 2035년까지 핵탄두를 1,000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수직적 핵확산' 계획을 각각 추진하는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사용 문턱을 낮추는 위험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은 핵 고도화를 가속화하여 핵탄두 소형화, 다양한 발사 플랫폼 개발,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등을 통해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되었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독자적 핵무장 불가'와 '비핵화·핵비확산' 주장을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떠받들고 있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핵능력을 금기시하는 이러한 자가당착은 조선말기 사대부들이 서구 문물을 '사악한 것'으로 배척했던 소중화사상과 다를 바 없다. 비핵화 맹신론의 가장 큰 위험은 이념적 순결성에 집착하여 현실적 안보 위협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포기한다는 점이다. 19세기 위정척사 운동이 서구의 과학기술을 이념적 이유로 거부하여 국운 도약의 기회를 상실했던 것과 똑같다.
비핵화 맹신론은 세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현실 인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북한 핵위협의 실존적 성격을 과소평가한다. 북한은 이미 60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 전역을 핵 사정권 내에 두고 있다. 둘째,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맹목적 신뢰는 동맹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동맹국도 자국의 주요 도시를 희생하면서까지 동맹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 확장억제는 외교적 레토릭(즉, 립서비스)일 뿐이지, '정책'이 아니다. 셋째, 국제 핵 비확산 체제의 규범적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2022년 2월 24일 핵보유국 러시아가 비핵화를 선택한 우크라이나를 불법적으로 무력침략하는 순간, NPT 체제는 '사망'했다.
비핵화 맹신론 극복은 북핵 위협 해결의 최우선 과제다. 북핵 위협이 실존적 수준에 도달한 현 상황에서, 이념적 상징성에 집착하여 자위적 핵 옵션을 제 손으로 포기하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기에 빠뜨리는 자해행위다. 우리의 독자적 핵무장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외부의 미국이 아니라, 내부의 비핵화 맹신이다.
자위적 핵억제력 확보의 필요성은 다음의 현실적 고려에 기반해야 한다. 첫째, 북핵 위협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없다.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른다. 둘째, 미국 확장억제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원죄'를 의식해야 하는 미국은 자국이 먼저 핵공격을 받지 않는 한, 동맹국을 위해 핵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것인가?"라는 드골의 위대한 통찰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셋째, 핵무장을 반대하는 인사들은 "왜 우리가 핵무장에 나서면 안되는가?"라며 장황하게 이유들을 나열한다. NPT 모범국 위상 훼손, 핵무장에 나서는 순간에 경제 폭망, 핵물질 제조의 어려움, 우라늄 확보 난망 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는 기-승-전-확장억제를 고집한다.
이런 주장에 한 가지만 묻고자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생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린 그 순간에, 만에 하나라도 미국이 철석같이 약속한 확장억제가 작동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경우, 당신의 '플랜 B'는 무엇인가? 굳이 답변을 들을 필요도 없다.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비핵화 맹신론의 치명적 단점이다. 요컨대, '희망적 사고'는 '정책'이 아니다.
이제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여, '자위적 핵억제력 확보'가 시대적 명령임을 인정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NATO식 핵공유, 핵잠재력 확보, 독자적 핵무장 등 다양한 옵션을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우리의 자위적 핵능력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억제·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핵은 핵으로만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지금도 미국·중국·러시아가 '수직적 핵확산'에 골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일찍이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19세기 말 조선의 몰락이 소중화사상이라는 이념적 맹신에서 비롯되었듯이, 오늘날 비핵화라는 명분적 집착과 전략적 맹목성 또한 국가 존망을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이제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여, 우리의 '자위적 핵억제력 확보'를 시대적 사명으로 인정해야 한다. '소중화사상'의 오류를 고집한다면 또 다시 국가 패망의 비극을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