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중심은 아동 건강권과 최선의 이익"
'진단 방랑' 끝내고 치료 앞당기는 '아기지기 프로젝트'
"알 권리 넘어 치료권으로"…논쟁보다 사회적 합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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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이범희 의학유전학센터 교수는 신생아 유전체 선별검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7000종이 넘는 희귀유전질환은 발생 빈도가 낮아 환자와 가족들이 수년간 병원을 전전하는 '진단 방랑(diagnostic odyssey)'을 겪으며 치료 적기를 놓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저출산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신생아 희귀유전질환의 조기 진단은 아이와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양육 부담을 줄이는 핵심 대안으로 꼽힌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선샤인 제네틱스(Sunshine Genetics)'처럼 주요 선진국도 전장유전체 선별검사를 공공의료 서비스로 전환하는 추세다.
최근 유전자·표적치료제 개발로 치료 가능한 유전질환이 늘면서 조기 진단 여부가 치료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이 교수는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질환을 뒤늦게 확인하게 된 부모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유전정보 자체가 아니라 치료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일 수 있다"며 "신생아 유전체 검사를 둘러싼 논의는 개인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아동의 건강권과 최선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생아 전장유전체 선별검사의 가치는 무엇을 알게 되는가보다,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의 기회를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는가에 의해 평가돼야 한다"고 했다.
'전장유전체'라는 명칭 탓에 모든 유전정보가 공개되거나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상당수 소아 희귀질환은 새롭게 발생한 '신규 변이'에 의해 나타난다. 지난달 7~8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 신생아 시퀀싱 컨소시엄 연례 학술대회(ICoNS 2026)'에서도 전 세계 프로그램들이 2만개 이상의 유전자 중 의학적 실행가능성이 확인된 평균 약 600개만을 선별해 보고 대상으로 활용한다는 분석 결과가 공유됐다. 이 교수는 "오늘날 신생아 전장유전체 선별검사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치료 가능한 질환을 놓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시행중인 국가 연구사업인 '아기지기 프로젝트'는 양성 결과 반환, 유전상담, 전문 진료 연계, 가족 위험 평가에 이르는 임상적·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원인 불명의 선천성 간·담도 기형으로 첫째를 잃은 가족이 연구사업을 통해 둘째의 유전적 위험을 증상 발현 전에 확인해 선제적 간 기능 평가와 가족 건강 관리로 이어진 실제 사례가 있다. 또 기존 신생아 선별검사에서 발견되지 않은 치료 가능한 희귀유전질환을 조기에 확인해 식이요법과 약물치료를 시작한 사례도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연구사업을 넘어 제도적인 안착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당부했다. 이 교수는 "신생아 전장유전체 선별검사를 둘러싼 논의는 더 이상 알 권리와 모를 권리의 추상적 대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핵심 과제는 아동과 가족에게 실질적인 건강상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떻게 책임 있게 활용할 것인가"라고 전했다.
이어 "국가는 의학적 근거와 제도적 보호 장치를 지속적으로 보완하면서 신생아 전장유전체 선별검사의 전국적 확대와 접근성 향상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씨앗을 뿌릴지 말지를 두고 논쟁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뿌려진 씨앗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한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제도를 어떻게 가꾸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지혜와 합의"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