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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예술요원 병역 특례 제도를 둘러싼 최근 논란은 병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병역, 국방은 '신성한 의무'다. 여기에는 공동체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병역을 개인이 일방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손해나 희생으로 여긴다면 병역 특례는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특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묵묵히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의 원인이 된다. 이런 인식이 굳어지면 공동체를 위해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직 누가 혜택을 받느냐에만 관심이 쏠린다.
병역 특례가 개인의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일부 젊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언행은 그래서 안타깝다. 병역은 공동체에 기여할 책임을 부여 받은 것이라는 인식이 이들에게선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면 공동체를 위해 다른 방식의 기여를 고민하고 이에 걸맞는 행동을 보였어야 했다.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도 잊지 말았어야 했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에게 자긍심을 안겨준 것이, '운동선수에게 전성기의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명분이 병역 특례를 '당연한 권리'로 만들수는 없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병역 특례 폐지까지 거론 되고 있다. 체육·예술계는 나름의 이유로 개선과 보완을 주장한다. 당연히 제도적 불공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병역 특례 대상과 선정 기준이 공정하고 합리적인지 살피고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제도를 손본다고 모든 갈등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는 동의하기 쉽지 않다. 국가가, 공동체가 존속하는 한, 그리고 병역을 희생과 보상이라는 잣대로 바라보는 한 형평성 논란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인식을 바꾸자. 병역을 희생이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 부단한 교육이 필요하고 구성원 간 존중의 자세도 요구된다. 국가 역시 책임 있는 실천 의지를 갖춰야 한다.
병역 특례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이 이해관계에 따른 단순한 주장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국방과 병역의 신성한 가치를 되새기고 공동체적 책임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질문을 다시 던질 필요가 있다. '누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책임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 저출생으로 병역 자원이 줄어들고 있다. 병역의 무게감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책임을 이행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지만 '오늘'을 누리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한명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