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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설계자들 ②] 군복 벗은 장군 프라보워…군이 차리는 6250만명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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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9. 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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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패한 뒤 정적 조코위 내각에 합류
현직 대통령 아들과 손잡아 58.59% 압승
무료급식 57만명서 6250만명으로 확대
군식 동원력은 성과, 제도·안전은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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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에서 러닝메이트로 함께 출마, 당선된 프라보워 수비안토(왼쪽)과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의 아들 기브란 라카부밍(오른쪽)/프라보워 페이스북
취임 닷새째를 맞은 2024년 10월 25일 새벽 4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내각 각료들이 중부자바주 마겔랑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 집결했다. 위장 전투복과 군화 차림의 장관들은 맨손체조와 제식훈련을 소화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군사정부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군 특유의 방식은 조직의 기율을 확립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일치시키는 데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장군 출신 프라보워의 국정 운영 방식은 여느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보통의 정부라면 목표를 세운 뒤 부처가 계획을 짜고 예산과 절차를 거쳐 집행한다. 하지만 프라보워는 이 과정을 건너 뛴다. 숫자를 먼저 선포하고, 군·관료·기업과 민간자본을 하나의 지휘선에 묶어 곧바로 투입한다. 정책이 아니라 '작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료 영양식(MBG) 사업이다. 학생과 임신부·수유부 등 8300만명의 밥상을 책임지겠단 목표를 내걸었다. 2025년 1월 57만명으로 출발한 사업은 1년 반 만에 6250만명까지 확대됐다. 인구 2억8000만명이 광대한 군도에 흩어진 나라에서 영양 문제를 한꺼번에 풀겠다는 구상은 복지정책이라기보다 '국가 작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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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벗은 장군, 선거와 연합을 배웠다
프라보워는 자수성가한 군인이 아니다. 그의 부친 수미트로 조요하디쿠수모는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정권에서 잇따라 장관을 지낸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였다. 1958년 부친이 지방 반란에 연루돼 망명길에 오르면서 프라보워는 싱가포르와 홍콩, 말레이시아, 스위스, 영국 등의 국제학교를 거치며 유년기를 보냈다.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육군 특수부대 코파수스 지휘관과 육군 전략예비사령관 등 요직을 거쳤고, 1983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딸 티티엑과 결혼하며 정권 핵심부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1998년 수하르토 독재 체제가 붕괴하며 그의 군 경력도 불명예스럽게 마감됐다. 민주화 시위 당시 동티모르 군사작전과 민주화 운동가 납치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군에서 강제 전역당한 것이다. 프라보워는 관련 책임을 줄곧 부인하며 법정에 서지 않았고 일부 부하들만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당시 실종된 활동가 13명의 행방은 지금까지도 묘연하다.

군에서 쫓겨난 그가 다시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까지는 26년의 세월이 걸렸다. 2014년과 2019년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조코위) 전 대통령에게 연거푸 패배하자 그는 전면 대립 대신 '정권 내부 침투'라는 굴절을 택했다. 2019년 조코위 내각의 국방장관직을 전격 수락하며 옛 정적과 손을 잡았고, 2024년 세 번째 대권 도전에서는 조코위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선거 전략 역시 환골탈태했다. 과거의 강경하고 권위주의적인 군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유세장마다 엉성하고 친근한 춤을 추며 유권자들의 경계심을 허물었다. 특히 자택에 굴러들어 온 유기묘 '보비(Bobby)'를 전면에 내세운 SNS 마케팅은 결정적이었다. 고위급 회의 테이블에 태연히 올라앉는 모습으로 대선 캠프 마스코트가 된 보비는, 취임 후 인스타그램 팔로워 100만 명을 거느린 대통령궁의 '퍼스트 캣'으로 등극했다.

여기에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외아들의 세련된 배경까지 맞물리며, 젊은 층 사이에서는 그에게 '게모이(사랑스럽고 친근한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프라보워가 다져온 군·보수 정당 네트워크에 조코위의 막강한 대중적 지지와 관료 조직이 결합하자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그는 58.5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결선투표 없이 단판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권력을 획득하는 정치 기술은 사령관 시절보다 한층 유연하고 교활해졌으나, 집권 후 국정을 운영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군부 엘리트 특유의 강권 통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는 평가다.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수중 헤드폰으로 록과 군가를 들으며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외국 정상에게까지 담배를 꺼달라고 면박을 줄 만큼 자기 방식이 뚜렷한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200, 나폴레옹은 180. 나는 105밖에 안 되지만 130, 140인 사람을 쓸 줄 안다"며 역사 인물의 IQ를 줄줄 읊는 역사광이자 '리더'란 자부심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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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군인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모습/페이스북 캡쳐 갈무리
◇8300만명 밥상, 대통령 직속 작전으로
무료급식을 집행하는 국가영양청은 조코위 정부 말기인 2024년 8월 만들어졌다. 프라보워는 이 조직을 자신의 최대 선거공약을 수행하는 '사령부'로 키웠다. 교육·보건·지역행정에 걸친 사업을 대통령 직속기관 아래 묶어 전국 단위로 밀어붙였다.

사업 첫날 전국 20여개 주의 급식소 190곳에서 57만명이 식사를 받았다. 정부와 군이 물류를 지원했고, 급식소 책임자로 배치될 인력은 국방부와 군이 운영하는 기초군사·관리 교육도 거쳤다. 수많은 섬에 주민이 흩어진 인도네시아에서 군은 명령 하나로 인력과 차량, 시설을 전국에 투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직이었다.

프라보워에게 무료급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나이에 비해 유난히 작은 아이들을 보며 영양실조와 빈곤을 실감한 것이 사업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동의 영양과 학습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농민·어민과 영세업자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는 '미래 세대 투자'라는 것이다.

과감한 속도로 밀어붙인 덕에 성과는 금방 나타났다. 2025년 8월 수혜자는 2000만명을 넘어섰고, 2026년 예산 재검토 전에는 6250만명까지 늘었다. 불과 1년 반 만에 인도네시아 인구 5명 중 1명 이상에게 식사를 공급하는 전국망을 세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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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왼쪽)에게 4성 장군 견장을 수여받고 있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AP 연합뉴스
◇속도 앞선 제도, 성과와 비용 함께
그러나 속도전과 제도적 관리 역량은 별개의 문제였다. 위생과 조리 시설, 표준 운영 규격을 충족하지 못한 거점 급식소가 속출하자, 국가영양청(BGN)은 지난달 27일 기준 미달 급식소 833곳에 대해 전격 운영 정지 처분을 내렸다. 2026년도 사업 예산 역시 당초 배정된 335조 루피아(약 26조1970억 원)에서 229조 루피아(약 17조9078억 원)로 30% 넘게 잠정 삭감됐다.

상황이 악화하자 프라보워는 양적 확대 일변도에서 벗어나 품질 관리와 식품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국가영양청에는 한 달 이내에 예산 배분 및 운영 관리 체계를 전면 재설계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무료 영양식 프로젝트는 프라보워 체제의 파괴력과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단기간에 수천만 명을 포괄한 국가적 동원력은 유의미한 성과로 평가받지만, 공급망을 급조하는 일과 식품 안전·조달 계약·재정 건전성을 상시 관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행정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프라보워는 두 차례 대선 고배 끝에 정적과의 연대도 마다치 않는 유연한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대선 국면에서는 표심을 잡기 위해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광범위한 연정을 구축했다. 그러나 최고 권좌에 오른 뒤에는 거대한 과녁을 제시하고 특별 사령탑을 신설해 인력과 자본을 일거에 쏟아붓는 장군 시절의 통치 스타일로 회귀했다.

권력을 쥐기 위해 표와 연합의 기술을 배웠던 노련한 정치인은, 권력을 행사하는 순간 다시 명령과 동원에 의존하는 사령관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억8000만 인구의 복지는 일망타진해야 할 군사 목표가 아니다. 거대한 과녁을 향해 돌진하던 프라보워 대통령은 이제 국가영양청이라는 사령부 너머, 복지국가의 기본인 '관리와 검증'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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