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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자체는 선명해 보인다. 부동산, 특히 고가주택의 세 부담은 크게 늘리되 실거주자에게는 숨통을 틔웠다. 미래 산업과 지방 투자에는 세제 혜택을 확대하였고, 기업 승계 지원은 그 대상을 좁혔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네 개의 축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성장이다. '한국판 IRA'로 불리는 국내생산세액공제가 대표적이다. 태양광, 풍력, 이차전지, 반도체, 핵심소재, 인공지능 로봇부품 등 6개 분야에서 국내 생산·판매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준다. 그동안 세제 지원은 연구개발과 시설투자, 즉 돈을 쓰는 단계에 집중됐다. 이번에는 생산 단계까지 넓혔다.
둘째, 지방이다. 기업이 지방에 투자할수록 혜택이 커진다. 국내생산세액공제는 수도권을 1로 놓고 비수도권에 1.1, 1.3, 최대 1.5의 가중치를 적용한다. 같은 공장이라도 지방에 투자하면 지역에 따라 더 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 균형발전 정책의 한 축이 공공기관 이전이었다면, 이제는 세금으로 기업의 투자 결정을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셋째, 부동산 실거주다. 집을 몇 채 가졌느냐 못지않게 그 집에 실제로 사는지가 중요해진다.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는 실거주하면 14억원, 그렇지 않으면 9억원이다. 양도소득세에서도 오래 보유한 사람에게 주던 혜택의 일부가 오래 거주한 사람에게로 옮겨간다. 주택을 투자자산보다 거주공간으로 보는 원칙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넷째, 기업 승계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지만, 이번 개편안에 이를 직접 낮추는 내용은 없다. 대신 1997년 도입된 가업상속공제를 손봤다. 무엇을 '가업'으로 볼 것인지부터 다시 정의해 외부 기술에 주로 의존하는 프랜차이즈, 부동산 임대, 이자·배당이 주된 소득인 기업 등을 제외한다. 대상 업종도 종전 16개 대분류에서 727개 세부 업종으로 나눠 법에 직접 열거한다. 요건을 충족하면 공제 한도가 늘지만 문턱도 높아진다. 물려주는 사람의 계속 경영기간은 10년에서 30년으로, 상속 후 업종·자산·고용 유지기간은 5년에서 10년으로 길어진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아쉬운 대목도 있다.
첫째, 세법이 갈수록 누더기처럼 복잡해지고 있다. 정책 목표가 하나 늘 때마다 새로운 공제와 감면이 생기고, 여기에 지역·소득·나이·보유기간·거주기간에 따른 조건과 적용기한, 예외, 경과규정이 얹힌다. 예컨대 세무사 업계에서조차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다주택자가 종부세를 계산하려면 거주 주택의 가치가 보유 주택 전체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까지 따져야 한다. 양도세의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장기거주 공제와 장기보유 공제로 나뉘고, 실제 거주하지 않았어도 거주한 것으로 인정하는 예외가 취학, 근무상 형편 등 사유별로 붙는다. 가업을 물려주려는 기업은 727개 세부 업종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주업종과 부업종을 매출액 기준으로 나누기 위해 구분경리까지 해야 한다.
좋은 세금은 납세자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세금을 얼마 낼지 알기 위해 매번 전문가를 찾아가 수많은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면 행동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비용을 납세자만 지는 것도 아니다. 과세당국의 해석과 행정비용이 늘고 분쟁도 많아진다. 2025년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심판청구는 7225건이었고, 처리된 사건의 인용률은 23.5%였다. 과세당국의 판단이 네 건 중 한 건꼴로 뒤집힌 셈이다.
세법의 단순화는 좋은 조세제도의 핵심 원칙이다. 예외와 감면을 줄이고 세원을 넓히면 같은 세수를 더 낮은 세율로 거둘 여지가 생긴다. 절세를 위한 의사결정의 왜곡이 줄고, 조세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에도 유리하다. 세제 단순화는 효율성과 공평성을 함께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개혁이다.
둘째, 30년 뒤 대한민국의 재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현행 제도가 유지될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 49.1%에서 2045년 97.4%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큰 폭의 세부담 증가는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세감면액은 계속 늘어 올해 사상 처음 8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물론 한 해의 세제개편안에 모든 해법을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30년 뒤, 50년 뒤의 문제일수록 일찍 움직여야 한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향후 20년간 의무지출 증가분의 15%만 줄여도 2065년 국가채무비율은 156.3%에서 105.4%로 낮아진다. 작은 조정도 30년, 50년 쌓이면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세제는 오늘의 정책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30년 뒤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기업이 장기 투자에 나서고 해외 자본도 한국을 믿고 들어올 수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자본시장의 발전 역시 그런 신뢰 위에서 가능하다. 정부 정책의 진심이 세법에서 드러난다면, 그 세법에는 오늘의 정책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도 담겨 있어야 한다.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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