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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를 본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평은 재밌었다. 의도적으로 최소한의 정보도 배제한 채,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라는 딱 두 개의 정보만 가지고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많은 선입견을 줄 수 있다. 나홍진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추격자'는 재능 있는 신예 감독이 만든 장편 데뷔작이라고 해서 보았다가 기겁했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살인을 보고 있자니 한마디로 무서웠다. 두 번째 작품 '황해'는 컷의 현란함과 중간중간 드러나는 과잉된 날것의 폭력이 불편했고, 역시 무서웠다. 세 번째 작품, 곡성은 진짜 한국산 오컬트를 만난 것 같아 소름이 돋았고, 마찬가지로 두렵고 무서웠다. 나홍진 표가 붙은 작품은 적어도 내겐 무서운 코드로 넘쳐났기에 호프도 무서움을 견지한 채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적어도 영화 삼분의 일 지점까진 무서움을 기대하며 쪼여가는 재미가 있었고, 이후 쫓고 쫓기는 화려한 체이싱 장면이 대부분이라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메시지는 마지막에 집중되는데, 그 방식이 친절하지 않아 '뭐지?'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게 했다.
영화 호프의 미덕이라면, 몰입감 넘치는 추격신으로 인해 관객을 수동적인 주체로 꼼작 못 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개연성의 부재와 불친절한 설정들 때문에 역설적으로 관객이 그 간극을 메우게끔 하는 독특한 힘이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관객으로 하여금 수동성과 능동성의 경험을 함께하게 하는 모순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런데 경계에 서있는 경험은 익숙하지 않은 시공간에 불쑥 던져진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극 중 호포항이라는 접경 지역 어촌 마을은 낡고 허름한 단층 건물이 늘어선 1970년대 말로 보이는 공간이다. 한편, 숲속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은 아름드리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원시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산과 계곡을 길게 가로지르는 자동차 전용 도로신은 현대적으로 개발된 공간이다. 따라서 시공간 자체가 왜곡됐기에 관객은 자신들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 수 없다. 좌표를 잃은 자의 혼란은 체이싱 장면을 몰입상태에서 생각 없이 따라가게끔 하면서도 관객이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각성케 한다.
사실 영화 호프를 보고 있자면 특별히 평론가가 아니더라도 특정 장르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수많은 영화가 중첩돼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괴수가 진격의 거인을 연상케 하고, 극 후반에 밝혀지는 외계인들 모습은 프로메테우스나 에일리언 또는 프레데터 그리고 아바타의 나비족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폭력의 원점에 서 있는 등장인물 양배(음문석)의 작업실 공간은 SF 고전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레플리칸트를 유전적으로 디자인하는 극중 인물 세바스찬의 집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한국 영화의 여럿 모티브가 원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나아가 감독의 전작들과 동일한 연장선에 놓여있는 장면이나 설정도 쉽게 눈에 띈다. 이런 경향 역시 혼성모방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기에 마이너스 요소라기보단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얘깃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대 텍스트론에 적합한 모델이다.
어려서 읽은 이솝우화 '까마귀와 새 깃털'에서 주인공 까마귀는 다른 새들의 깃털을 주워 몸에 꽂아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려다 결국 들키고 벌받는다. 이 우화의 메시지는 자기 모습에 만족하고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려 하지 말라는데 있다. 또한 겉모습만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기준을 따라 자신을 꾸미려는 태도를 비판한다. 나아가 자기의 본모습을 인정하고 솔직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다. 본질 찾기를 추구하는 모더니즘 미학적 관점에선 적합할지 몰라도, 현대적 관점에서 그렇지 않다.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주어진 정체성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지속적 수행을 통해, 흐름 속에서 정체성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가치가 높아가는 시대다. 주인공 까마귀는 비난과 타도의 대상이라기보단 오히려 지향점이 될 수 있다.
호프가 낯선 또 하나의 이유는 상사성(相似性) 속에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원본을 공유하는 유사성(類似性)과 달리 상사성은 계통적으로 관련이 적거나 거리가 먼 종에서 비슷한 환경에 적응해 비슷한 형태나 기능이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미학에서 상사성은 오리진을 공유하지 않기에, 우연성의 포착과 혼종성의 결과로써 차이의 생성에 가치를 둔다. 그 예를 굳이 영화 호프에서 찾자면,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의 외양과 외계인 지도자 조르의 모습이 닮아있으나 그 설정은 전혀 다른 양태로 나타난다. 잘 알려진 대로 영화 아바타는 서부 개척 시대 아메리칸 원주민의 거주지를 약탈해 가는 과정을 서사의 모티브로 한다. 그런데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미국의 폭력성을 지구인들이 판도라에 살고 있는 나비족에 대한 학살로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면, 호프는 정반대다. 한반도의 남쪽 군사분계선 아래 대한민국이라는 고립된 섬에 유입된 외계인은 어쩌면 과거 제국주의 시대 서구의 행태에 대한 메타포로 읽혀진다.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선교사들이 희생을 근거로 침략을 정당화하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호프가 묘하게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뒤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호프를 해석하는 많은 관점들이 극단적 '자기의 타자화'에 있단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조금 다른 해석을 꺼내보았다. 폭력적인 이분법적 태도로 일관하는 '타자의 자기화'에 못지않게 그 반대의 지점 역시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극단과 극단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건전한 논쟁보단, 넌 틀렸고 그러므로 말할 자격조차 없다는 주장이 난무한 것 같다. 선입견과 확증편향을 먹이 삼는 것이 바로 AI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교'다. 엉뚱한 곳에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온 SF영화 호프에 관한 작금의 논란이, 소위 '빠와 까' 그 사이에서 기왕이면 건강한 지적 놀이로써 즐거운 해석의 공론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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