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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급 수사 줄줄이 ‘제자리’…‘승진만능주의’ 앞에 멈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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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준 기자

승인 : 2026. 04. 20. 17:36

경찰, 정재계 거물급 수사 수개월째 지연
"조만간 결론" 입장 밝혔지만 기약 없어
美 대사관 "방시혁 의장 출국금지 해제" 요청
"승진이 생명줄인 경찰. 과감한 수사 결론 어려워"
경찰 마크. 송의주 기자
경찰 마크. /송의주 기자
경찰이 '검찰청 폐지'로 오는 10월부터 수사권을 사실상 독식하는 상황에서도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소극적 수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수개월째 수사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경찰을 지켜보던 미국은 피의자에 대한 출국 금지를 해제해달라는 이례적 '간섭'까지 시도하고 나섰다. 경찰 특유의 '승진만능주의'가 정·재계 거물급 수사와 맞닿으며 '답보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김병기 무소속 의원의 비위 의혹 수사에 대해 "한 번에 해결이 안 돼서 수사가 마무리된 혐의에 대해 우선 결론 내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조금 늘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사기적 부정거래 의혹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 수사도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해당 사건들은 모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이 맡고 있다. 김 의원 의혹의 경우 7개월째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경찰은 고소 또는 고발에 따라 범죄를 수사하는 경우 소장을 수리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쳐야 한다. 규명해야 할 의혹이 13가지다 보니 사실관계와 혐의 정리에 시간이 걸려 출석조사가 늦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지난 10일 김 의원 7차 출석 조사를 전후로 경찰이 일부 혐의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열흘 넘게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24년 말 시작된 방 의장 사건은 여전히 '법리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장기전'에 방 의장의 출국 금지를 해제해달라는 국제사회의 요청까지 접수됐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등을 이유로 최근 경찰에 방 의장을 포함한 하이브 고위 경영진이 미국에 방문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가 길어져 중요한 비즈니스나 자국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판단되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찰 수사 부서에서 판단하겠지만 출국금지 조건부 해제 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수사 사안에 대해 외국이 개입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미 의회는 지난 2월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를 미국 시민에 대한 형사 처벌 위협으로 보고 개별 청문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경찰은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 대표를 두 차례 불러 조사하고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대해 추가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으나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극적 수사의 배경에 '승진이 곧 생존'이라는 경찰의 생태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사권을 쥔 정치 권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재계 인사를 상대로 과감한 수사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경찰의 생명줄은 승진이다. 결정 권한을 가진 정치 권력에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승진을 할 수 없고, 퇴직하면 그대로 실업자로 전락한다는 의미"라며 "재계 거물들에 대한 수사 역시 이러한 이유와 밀접하게 얽혀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계급이 낮아도 직무 집행에 아무 문제가 없다. 경찰은 계급이 아니라 자신의 직무로 말해야 한다"며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경찰 계급 수를 축소하는 방안 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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