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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 대담하고 혁신적인 불륜극 ‘베이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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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5. 10. 28. 14:38

성공한 女CEO와 男인턴이 엮는 지배·피지배 치정극
여성의 성적 욕망 있는 그대로 인정…단죄하지 않아
니콜 키드먼 일생일대의 명연기 볼 거리…29일 개봉
베이비걸
영화 '베이비걸'에서 성공한 CEO '로미'(니콜 키드먼·오른쪽)는 인턴 사원 '사무엘'(해리스 디킨슨)과 위험한 만남을 이어간다./제공=메가박스중앙·올랄라스토리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에서 '불륜'과 '치정'은 길 가다 발에 채일 만큼 흔하디 흔한 소재다. 워낙에 많은 영화인들이 끊임없이 변주하고 반복하는 탓에 '불륜'과 '치정'을 다룬 영화 10편 중 8~9편은 그저 그런 수준으로 그치기 일쑤다. 그러나 실력파 배우의 몸을 던진 열연과 겁 없는 감독의 색다른 접근이 곁들여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29일 개봉하는 '베이비걸'이 바로 그 같은 경우다.

창고용 로봇 자동화 업체를 경영중인 미모의 CEO '로미'(니콜 키드먼)는 다정다감한 성품의 연극 연출가인 남편(안토니오 반데라스)과 사랑스러운 두 딸 등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슈퍼 우먼이다. 그러나 잠자리에서의 불만족스러운 부부 관계를 마조히즘적인 성적 판타지로 해결하는 나날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통스러워하던 와중에, 출근길 목줄 풀린 개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턴 사원 '사무엘'(해리스 디킨슨)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를 알아챈 '사무엘'은 직장 내 서열을 무시한 채 '로미'에게 복종을 주문하고, '로미'는 자신도 모르게 장난감을 자처한다.

베이비걸
니콜 키드먼(왼쪽)과 해리스 디킨슨은 영화 '베이비걸'에서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형성한다./제공=메가박스중앙·올랄라스토리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데 있다. 에로틱한 장면에서 남녀의 표정 혹은 몸동작을 번갈아 보여주며 관음증적 욕구 해결에만 급급한 비슷한 계열의 여느 작품들과 달리, 모든 초점을 여주인공의 주체적 의지에 맞추려 애쓴다. 이와 함께 음침하고 불온하게 와 닿는 지배와 피지배, 가학과 피학의 관계마저도 당사자들의 합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사랑의 또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역설한다.

연출자가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거나 권선징악의 틀로 단죄와 처벌에 나서지 않는 태도도 차별화되는 요소다. 보통의 에로틱 스릴러에서는 가족과 커리어 모두를 걸고 불륜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인물의 마지막이 좋을 리 없겠지만, '베이비걸'은 이 같은 선례를 보기 좋게 비켜간다.

거의 모든 장면에 출연하는 니콜 키드먼의 명연기는 단연 최고의 볼 거리다.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깨질 듯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겁에 질려 있지만, 대담하고 관능적일 뿐만 아니라 우아하다. 이제는 별로 궁금할 게 없는 50대 후반의 여성 연기자라고 지레 결론을 내렸다가는 큰 코 다친다.

커드먼을 받쳐주는 두 남자 배우의 호연도 근사하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와 '슬픔의 삼각형'으로 얼굴을 알린 디킨슨의 파격적인 '옴므 파탈' 연기와 젊은 시절 '라틴 종마'로 테스토스테론을 마구 쏟아냈던 반데라스의 '에겐남' 변신은 긴장과 이완을 번갈아 제공한다. 또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인엑시스의 '네버 티어 어스 아파트'('Never Tear Us Apart')와 조지 마이클의 '파더 피겨'('Father Figure')는 1980년대 팝 음악 팬들의 그 시절 꽤나 은밀했던 추억까지 소환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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