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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창열은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교육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고, 서울대 미술대학에 진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경찰전문학교에 입교해 제주도에서 1년 6개월간 근무했으며,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 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창작의 폭을 넓혀갔다.
1950년대 후반 그는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주도하며 서구에서 유입된 앵포르멜 미술을 한국 상황에 새롭게 접목하려는 실험을 이끌었다. 김창열에게 앵포르멜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총알 자국과 탱크의 흔적처럼 전쟁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화면에 메우는 행위였고, 죽음을 위로하는 제의(祭儀)와도 같았다. 그는 당시 대다수 작품에 '제사'라는 제목을 붙였고, 이 시기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상처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