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서 하종현 초기작, 국제갤러리서 최근작 전시 젊은 하종현의 실험정신부터 현대적인 '접합' 연작까지 조우
하종현 화백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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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불리는 하종현. /국제갤러리
한국 현대미술을 개척한 1세대 작가이자 '단색화 거장' 하종현(90)의 초기작과 최근작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각각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는 1959년부터 1975년까지 하종현의 초기 작업을 보여주는 '하종현 5975'전을, 국제갤러리는 2009년 이후 최근까지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Ha Chong-Hyun'전을 선보이고 있다. 실험 정신 가득한 젊은 날의 작품들부터 그의 대표작인 '접합(Conjunction)' 연작의 변천 과정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한국적 모더니즘의 개척자'로 불리는 하종현은 '접합' 연작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접합'은 지난 50여 년에 걸쳐 하종현을 대표하는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는 올이 굵은 마포(마대 자루)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을 고안해냈다. 한국전쟁 이후 화가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한 그가 재료로 선택한 마포는 밀가루, 철조망 등과 함께 전후 상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작가는 당시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재료들뿐만 아니라 손수 만든 도구들을 이용해 작업해 왔다.
[국제갤러리] 하종현_Conjunction 09-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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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Conjunction 09-339'. /국제갤러리
하종현 5975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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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하종현 5975'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는 하종현이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1959년부터 '접합' 작업을 시작한 1975년까지 청년 작가 하종현의 작업을 선보인다. 초기 작업은 한국전쟁과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등 한국 현대사의 변화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물질성과 재료를 실험한 결과물이다.
오랜 기간 모은 신문 더미와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같은 크기의 백지를 쌓아 올려 당시의 언론 통제를 비판한 설치작, 여러 개의 거울과 두개골, 골반 엑스레이 필름을 활용한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대학을 졸업한 1959년에 그린 깡마른 얼굴의 어두운 자화상과 '접합' 연작의 초기작들도 전시 중이다. 젊은 하종현의 흥미진진한 실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하종현의 1971년작 '대위'(2012년 재제작) 전시 모습[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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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1971년작 '대위'(2012년 재제작) 전시 모습. /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 근처 국제갤러리에선 하종현의 최근작들과 조우하게 된다. 기존의 '접합' 연작과 여기서 비롯된 다채색의 '접합', 자유분방함과 자연미를 강조한 최근의 '접합' 등 30여 점이 전시장에 걸렸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기존 '접합' 연작에서 기왓장이나 백자를 연상시키는 한국적인 색상이 주로 사용됐다면, 다채색의 '접합' 신작은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일상의 색을 도입해 보다 현대적"이라면서 "자유분방하지만 사전에 계산된 듯한 사선 형태의 붓 터치도 최근작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종현의 화가로서의 여정은 재료의 물성 탐구를 통해 하나의 범주에 얽매이길 부단히 거부하는 과정이었다"며 "이는 전통적 회화 관행에 대한 거부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천착해온 작업 방식으로부터의 탈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하종현 개인전 전경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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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하종현 개인전 전경. /국제갤러리
하종현은 1959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 미대 학장(1990~1994)과 서울시립미술관장(2001~2006)을 역임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는 4월 20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는 5월 11일까지 하종현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