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력·소탈함 갖춘 리더로 평가
세계 TV시장 17년 연속 1위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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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한종희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TV·가전 등 세트 부문을 총괄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을 이끈 경영자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33년 만에 국내 최대 기업 대표이사에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1962년생인 고인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입사해 '삼성'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입사 후 대부분을 TV 사업부에 몸담으면서 사내 최고의 TV 전문가로 통했다. 이런 역량을 인정받아 2017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을 맡았고, 2021년 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 세트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선임 이후에는 삼성전자 세트부문을 총괄했다. 생활가전사업도 함께 맡았다.
사내에서는 추진력과 소탈함을 동시에 갖춘 리더로 평가받았다. 내부 직원들의 불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리더십으로 큰 신뢰를 받았다.
특히 삼성전자가 TV 분야에서 독보적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삼성전자의 브라운관 TV부터 PDP TV, LCD TV, 3D TV, QLED TV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TV 제품을 개발하는 데 참여하거나 주도했고, 삼성전자가 세계 TV 시장에서 17년 연속 1위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 부회장은 지난 19일 삼성전자 주주총회 준비에 집중한 데 이어 주총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중국 출장길에 올라 중국 최대 가전 전시회 'AWE 2025'를 방문해 거래선과 미팅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주총에서 "올해 반드시 근원적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견조한 실적을 달성해 주가를 회복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한 부회장은 26일에도 신제품 공개 행사인 '웰컴 투 비스포크 AI'에서 직접 기조연설자로 나서 삼성전자의 AI 홈 비전과 비스포크 AI 신제품을 소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날 "37년간 회사에 헌신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고인은 TV 사업 글로벌 1등을 이끌었으며,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세트부문장 및 DA(가전)사업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셨다"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중국 현지 일정으로 직접 조문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유가족들에게 멀리서나마 깊은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임직원들도 이날 하루 종일 황망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업계에서도 고인을 추모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는 이날 LG전자 주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한 부회장은 한국의 전자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주셨고, 지난 37년간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라며 "참 아쉽게 생각하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한 부회장의 별세로 삼성전자는 당분간 경영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한 부회장의 별세에 따라 전영현 DS부문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후임자 인선은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