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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파란 하늘과 파란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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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9. 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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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클랭, 《ANT 84》
도판1. 이브 클랭, 《ANT 84》, 1960년, 니스 근현대미술관(MAMAC) 컬렉션(왼쪽 위) 이브 클랭이 고안한 그의 독자적인 색채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KB)'를 사용한 모노크롬 회화
프랑스의 대표적인 예술가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의 '텅 빔/빈공간(The Void, 1958)'은 "미술 작품의 가치를 구성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고 현대미술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작품으로 꼽힌다. 이브 클랭이 기획한 '텅 빔'은 파리 시내에 위치한 이리스 클레르 갤러리(Iris Clert Gallery)에서 1958년 4월 28일 월요일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8일간 진행된 전시이자 작품이다.

'원초적 상태의 감수성을 안정된 회화적 감성으로 전문화하기(La specialisation de la sensibilite a l'etat matiere premiere en sensibilite picturale stabilisee)'라는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원제목을 내건 이 '비물질적' 전시는, 흰색으로 칠해진 갤러리 공간에 텅 빈 유리 진열장 하나만을 놓아둔 대범한 구성으로 기획됐다. 갤러리의 흰색 공간은 이브 클랭이 며칠 동안 롤러를 이용하여 칠하였고, 이 텅 빈 갤러리 공간 자체가 전시이자 작품이었다. 어떤 회화나 조각, 그 어떤 사물도 없는 텅 빈 갤러리 공간을 작품으로 대체한 '볼 것 없는' 이 전시는 클랭이 사전에 배포한 초대장 소지자만이 무료입장할 수 있었고, 그 외에는 1인당 1500프랑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입장이 가능했기에 당시로선 대중들에게 자신을 과장하는 한 예술가가 일으킨 스캔들로 폄하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클랭의 서른 번째 생일이기도 했던 '텅 빔'의 개막일인 4월 28일, 전시는 밤 9시에 공개를 시작했다. 3000여 명의 관람객이 이리스 클레르 갤러리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클랭이 의도한 '원초적 상태의 감수성'인 갤러리 공간 안에 가득 찬 공기가 클랭의 전시라는 메커니즘에 참여함으로써 관람객의 정신과 신체에 침투되어 '안정된 회화적 감성'으로 전문화되기 위해서는 한 번에 10명씩만 입장할 수 있었다. 갤러리 입구와 로비에는 클랭의 독자적인 파란색의 커튼이 드리워졌고 공화국 근위대원 두 명이 그 앞을 지켰다. 이 근위대원들은 클랭의 두 명의 유도 유단자 친구가 그들을 다시 경호했다.

이브 클랭, 텅빔, 1958
도판2. 이브 클랭, <텅 빔/빈 공간>전시의 부분들, 이리스 클레르 갤러리, 파리

재미있게도 갤러리에 들어선 관람객들에게는 메틸렌으로 파랗게 물들인 진(gin)과 코앵트로(Cointreau) 칵테일 음료가 제공되었다. 파리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며 성황리에 마친 이 개막 행사는 전시를 관람한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잊지 못할 미학적 경험을 안겨 주었다. 이는 전시장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진 쿠앵트로 메틸렌 블루로 만들어진 칵테일 음료를 마신 관람객들 모두가 다음 날 이후 파란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관람객은 이브 클랜이 상상한 대로 '전문화된 안정된 회화적 감성'을 신체에 침투, 배출하며 전문화하는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클랭은 평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색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색채란 물질화된 감성이고, 모든 색은 공간의 술어인데, 특히 청색은 우주의 감성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이 우주의 푸른 감성은 예술가의 제스처·의도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이브 클랭은 갤러리 전시장 공간을 흰색으로 칠함으로써 푸른 감성을 탈물질화시켰지만, 파란 칵테일을 마신 관람객의 파란 소변을 통해 그 우주의 감성을 눈에 보이도록 물질화시켰다.

도판3 화가 이브 클랭의 모노크롬 청색 그림
도판3. 화가 이브 클라인의 모노크롬 청색 그림 <캘리포니아(IKB 71)>가 지난해 10월 23일 프랑스 크리스티 경매에서 1840만 유로에 낙찰되었다. 미화 약 2140만 달러, 한화 약 308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프랑스의 남부 항만도시 니스에서 태어난 이브 클랭은 열아홉 살 때, 자신의 친구들과 고향 해변에 누워 '세상 나누기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이후 조각가가 된 친구는 '지구/대지'를, 문학가가 된 친구는 '언어'를 선택했고, 클랭은 '지구를 둘러싼 신비로운 하늘(공간)'을 선택하고 그 위에 서명을 남겼다. 하늘에 서명하는 이 유명한 상징적 제스처를 통해 클랭은 마치 몽상 속에서 그 이후 그의 예술의 추진력, 즉 무한의 저편에 도달하려는 탐구를 예견했다. 마치 클랭의 '텅 빔'에서 파란 칵테일 음료를 마신 관람자들의 파란 소변처럼 비물질을 경험하듯이 클랭의 파란 하늘 역시 자신의 경험, 기억으로 영원히 소유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김주원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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