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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보다 대포…안중근의 옥중 유묵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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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8. 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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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환수한 '만국공법불여대포' 첫 공개
안중근의사 유묵 -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3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가 유묵을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 길이 2m에 가까운 종이 위에 힘차게 적힌 여덟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 국제법도 결국 대포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뜻을 담은 안중근 의사의 옥중 유묵이 116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국민 앞에 공개됐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이날 언론공개회를 열고 일본에서 환수한 '안중근 의사 유묵-만국공법불여대포'를 처음 공개했다. 지난해 5월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존재를 확인한 뒤 조사와 협상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로 들여온 유물이다.

이 유묵은 1910년 3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안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남긴 작품이다. 왼쪽 아래에는 안 의사 유묵의 상징인 손바닥 장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고,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사형 집행을 불과 며칠 앞두고 '대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새긴 마지막 기록이다.

'만국공법불여대포'는 안 의사가 국제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지만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형을 선고한 현실에서 나온 절규다. 국제법보다 힘이 우선하는 제국주의 시대의 모순을 여덟 글자에 압축해 담았다.

서예사적 가치도 높다. 행서를 바탕으로 해서와 초서를 섞어 쓴 힘찬 필체와 손도장은 기존 보물인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 등 안 의사의 유묵과 높은 유사성을 보여 전문가들로부터 진본으로 인정받았다.

안중근의사 유묵 -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1
안중근 의사 유묵-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 /국가유산청
이번 환수의 가장 큰 의미는 작품의 전승 과정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유묵 뒷면의 묵서를 통해 뤼순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처음 소장했고, 이후 다른 인물에게 전해져 표구·보존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안 의사 유묵 가운데 최초 소장자와 전승 경로가 확인된 사례는 드물어 사료적 가치도 크다.

이날 공개회에서는 2022년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 유묵-일통청화공'도 함께 전시됐다. 두 작품은 모두 순국 직전인 1910년 3월 뤼순감옥에서 남긴 유묵으로, 안 의사의 사상과 서체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광복절을 앞둔 뜻깊은 시점에 안중근 의사의 독립과 평화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공개하게 돼 의미가 크다"며 "선열들의 광복을 위한 염원과 헌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국가유산청과 함께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발굴·환수해 국민과 그 가치를 널리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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