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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의 도쿄시선] 교실은 공간이 아니라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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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2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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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최근 일본 슈메이대학교 학교교사학부 1학년생들과 함께 영국 켄트 지역의 초·중등학교들을 방문하였다. 이번 일정은 예비교사들이 영국 학교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우는 동시에, 현지 학생들에게 서예와 종이접기, 기초 일본어를 소개하는 학교 방문 프로그램이었다. 며칠에 걸쳐 여러 학교를 돌아본 뒤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결론은 하나였다. 교육은 교과 내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실의 크기와 구조, 복도와 벽면의 문구, 교사의 말투, 학생을 대하는 거리감, 지원 인력의 배치, 심지어 급식이 제공되는 방식까지 모두가 교육이었다. 영국 학교를 보고 있으면 학교란 한 사회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드러내는 문화적 공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번에 방문한 학교들은 서로 조건이 크게 달랐다. 비교적 새 건물과 넓은 교실을 갖춘 학교도 있었고, 지역의 산업 쇠퇴와 생활 여건의 어려움이 그대로 배어 있는 학교도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고, 종교적 정체성이 분명한 학교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차이 속에서도 영국 학교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결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말하게 하는 수업과 아이를 지탱하는 환경이었다.

우선 수업 방식이 그랬다. 영국 학교 수업은 정답을 빨리 맞히게 하는 데보다, 학생이 자기 생각을 말하게 하는 데 훨씬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지역 상권의 변화를 관찰하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 뒤 앞으로를 예측하게 하는 지리 수업, 뮤직비디오를 분석하며 촬영 기법과 연출 의도를 읽어내는 미디어 수업, 건강과 생활 습관을 주제로 질문을 만들고 토론하게 하는 수업 등은 모두 공통된 방향을 보여주었다. 학생은 지식을 받아 적는 존재가 아니라, 관찰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존재로 훈련되고 있었다. 이 점은 예비교사인 우리 학생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일본 학교에서 익숙한 수업과 비교했을 때, 영국 학교의 교실은 훨씬 더 '말의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교사의 부담도 커 보였다. 학생 참여가 활발한 교실은 언제든 소음과 산만함으로 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수업에서는 교사가 계속해서 집중을 환기시키고 교실 분위기를 붙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가 보여주는 현실도 분명했다. 교사는 단지 설명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에너지가 충돌하는 공간을 견디고 조율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영국 학교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교실과 복도가 끊임없이 말을 건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You are enough"라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다. "너는 이미 충분하다"는 이 짧은 문장은, 성적과 평가에 익숙한 동아시아의 교육 환경 속에서 자라온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그 주변에는 "You are strong", "You are brave", "You are loved", "Mistakes help us grow" 같은 메시지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학교가 아이에게 매일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이었다. 교육이란 지식을 더하는 일일 뿐 아니라, 아이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교실 뒤편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었다. "How can I write effective sentences to engage the reader?" 초등학생 교실에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문장을 어떻게 쓸까?"를 질문하고 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글쓰기를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생각을 조직하고 상대를 의식하며 표현하는 행위로 가르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질문이 내 어린 시절 교실에도 붙어 있었다면, 나는 훨씬 더 일찍 글쓰기의 기쁨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영국 학교의 힘은 이런 보이는 메시지에만 있지 않았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있었다. 여러 학교에서 확인한 것은, 교실이 교사 1명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교사 외에도 학습지원 인력과 보조 인력이 함께 움직이며,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교실 안팎에서 돕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잠시 별도의 자리에서 진정할 수 있었고, 어떤 학생은 교사 외의 어른에게 추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포용은 선언이 아니라, 사람과 시간과 공간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급식 운영도 흥미로웠다. 한 학교에서는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식사를 받도록 해, 누가 정부 지원 대상인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설계하고 있었다. 이런 장치는 작아 보이지만, 학생의 존엄을 지키는 중요한 장치다. 복지는 혜택이 아니라 낙인을 없애는 방식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교육과 연결된다.

시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새 건물을 지은 뒤 학교 인기가 높아지고 학생 수준도 올라갔다는 설명은, 물리적 환경이 학교의 경쟁력과 이미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교실이 넓고 밝고 정돈되어 있으면 학생의 표정도 달라지고, 학교 전체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반대로 시설이 낡고 빠듯한 학교에서도, 교실 벽과 운영 방식,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 최대한의 존엄을 지키려는 노력이 보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의 많고 적음만이 아니라, 그 조건 속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느냐는 점일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슈메이대학교 학생들은 현지 학교에서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도 맡았다. 서예, 종이접기, 간단한 일본어 표현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은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설명이 잘 통하지 않을 때는 더 쉬운 말로 바꾸고,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순서를 조정하고, 예상치 못한 웃음과 실수 속에서 분위기를 살리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강의실 안에서 얻기 어려운 종류의 배움이었다. 예비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눈앞의 반응을 읽고 즉석에서 전달 방식을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을 학생들 스스로 체감했을 것이다. 이 며칠의 학교 방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됐다. 좋은 학교란 무엇인가. 시험 점수가 높은 학교일까, 시설이 좋은 학교일까, 조용한 학교일까. 영국에서 본 여러 학교는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보여주었다.

좋은 학교는 아이에게 "너는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을 주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교사의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벽에 붙은 문장일 수도 있고, 실수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일 수도 있으며, 도움을 받을 때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제도일 수도 있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현장을 보고 나면 오히려 교사의 필요성이 더 또렷해진다. 아이의 표정을 읽고, 말의 속도를 조절하고, 산만한 분위기를 붙잡고,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먼저 알아채는 일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기술은 보조할 수 있어도,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영국의 학교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 교실은 공간이 아니라 문화이며, 교육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총합이라는 점이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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