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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The Show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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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생 스포츠'다. 'H2', '터치', '클로저 이상용' 같은 야구 만화를 섭렵했으며, 가장 감명 깊게본 스포츠 영화도 '머니볼'과 '퍼펙트게임'이다. 각종 리그의 역사, 선수들의 스탯을 꿰뚫고 있고 세이버메트릭스를 비롯한 과학적인 지표에도 관심을 가졌다.
당연히 '마구마구', '게임빌 프로야구', '프로야구 매니저' 등 다양한 야구 게임을 즐겼지만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콘솔 야구 게임 'MLB The Show(이하 더 쇼)' 시리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더 쇼' 시리즈를 플레이하게 되자 가슴이 설렜다.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야구의 즐거움을 다시 되살려 줄 거란 기대가 있었다.
◆ 넘치는 콘텐츠, 그야말로 '야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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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더 쇼 25에 추가된 다양한 콘텐츠.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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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더 쇼 25는 그야말로 야구 백화점이었다. 흔히 커리어 모드라 불리는 'Road To The Show'에서는 메이저리거의 삶을 느낄 수 있고, 팀을 경영하는 프랜차이즈 모드, 선수 카드를 모아 다른 이들과 경쟁하는 Diamond Dynasty, 보드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혁신적인 게임 모드 'Diamond Quest' 등 야구 게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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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그로리그의 전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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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야구 역사를 조명하는 콘텐츠도 인상 깊었다. 바비 아브레우 같은 왕년의 메이저리그 올스타들을 다루는 스토리, 메이저리그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니그로리그(192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존재했던 미국의 유색인종 야구 리그)의 전설적인 흑인 야구 선수들을 조명하는 콘텐츠가 있었다.
경기의 디테일도 잘 살렸다. 들쑥날쑥한 제구, 선수 특유의 제스쳐, 실제 선수가 된 듯한 생동감, 타석에서 바라보는 공의 궤적 등 실제 선수가 돼서 플레이하는 느낌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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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플레이하기 어려운 이렇게 명령만 내리는 식으로 즐길 수도 있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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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인터페이스나 경기가 끝난 뒤 나오는 자료들, 스윙 타이밍과 구종 등을 분석하는 시스템 등 야구의 모든 첨단 기술이 MLB 더 쇼에 집약되어 있었다. 게임 내 중계진의 목소리도 MLB 중계에서 듣는 그대로여서 감명깊었다.
원하는 수준에 맞는 플레이가 가능한 것도 좋았다. 고수 유저들은 디테일을 살려 정교하게 게임하고, 편하게 게임하고 싶은 유저들은 방향이나 타이밍만 맞추는 식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만약에 학창 시절에 이 게임을 알았다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구팬에게는 천국과 같은 게임이었다.
◆ 너무 리얼해도 탈...야구 팬 좌절시킨 100마일 패스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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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마일, 약 150Km 직구에도 타이밍을 못 맞춘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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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쇼 25는 야구게임으로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리얼한 묘사탓에 왜 그간 야구를 멀리했는지 알게 해줬다.
평소 야구를 보며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프로야구를 보면 "왜 저것도 못 맞추지?", "왜 공을 스트라이크 존에 못 넣지?", "왜 저 멀리 빠지는 공에 스윙하는 거지?" 등의 말이 절로 나온다. 팬들 사이에서는 야구는 '정신병 유발' 스포츠로 불리기도 한다.
응원팀인 롯데 자이언츠가 허구한 날 바닥을 기고 있는 탓에 프로야구를 안 봐서 한동안 그 '분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 게임을 통해 '분노'가 아닌 '답답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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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 싱커가 96마일?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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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마구마구, 프로야구 매니저 시리즈 등 매니지먼트나 캐주얼 야구 게임은 많이 했지만, 현실과 비슷한 야구 게임은 거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게임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어려웠다는 점이다. 특히 타격이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타자는 0.4초만에 날아오는 150km/h 이상의 공을 상대해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구종과 궤적을 판단하고 밀리미터 단위로 정확히 공을 맞혀 담장 밖으로 보내야 한다.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도 이처럼 정밀한 타이밍과 예측이 동시에 요구되는 종목은 없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타이밍은 스스로 맞춰야 했는데,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빠른 공 타이밍 맞추는 것도 힘든데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커브,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 미친 각도로 꺾이는 슬라이더까지 신경 써야 했다. MLB 더 쇼라는 이름답게 메이저리그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줬다.
실전 야구 게임을 거의 즐기지 않아 비기너, 루키 난이도로 게임을 즐겼음에도 이런 참사가 나오자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떡하겠는가 야구가 원래 이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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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페타주 삼진 잡아봤나.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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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수 탓도 있다. 오버롤 60~70을 왔다 갔다 하는 빈약한 선수진으로 애런 저지, 오타니, 바비 위트 주니어,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등 야구 괴물들이 모인 올스타 라인업을 상대하려니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이렇게 MLB 더 쇼에게 좌절감을 느꼈지만, 본래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고 했다. 언젠가 저 100마일 직구를 받아쳐 시원한 홈런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야구 선수들도 한 시즌을 치르기 위해 겨울, 봄 동안 몸을 만드는 시간을 가진다. 다가오는 야구 시즌에 맞춰 천천히 야구 게임을 위한 반응속도와 센스를 만들어서 올 한해 느긋하게 게임을 즐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