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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고립주의적 트럼프 현상,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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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4. 10. 23:33

강성학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미국의 역사학자 프랭크 클링버그(Frank Klingberg)가 1952년 〈세계정치〉(World Politics)에 발표한 논문 '미국외교정책에서 분위기의 역사적 순환 (Historical Alternation of Moods in American Foreign Policy)'은 1960년대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국외교정책의 역사에서 '외향성(extroversion)'과 '내향성(introversion)'이란 분위기가 주기적으로 전환하는 미국외교정책의 경향을 발견했다. 전자는 미국이 국가목표를 위해 다른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외교, 군사,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경향을, 후자는 다른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국내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각각 의미했다. 클링버그는 평균 21년의 네 번의 내향성 기간과 평균 27년의 외향성 기간을 찾아냈다.

1985년에 잭 홈즈(Jack Holmes)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분위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고 정치-군사 이익과 미국 유권자들 사이의 외교정책 분위기 간의 충돌에 집중했다. 그에 따르면 전반적인 미국의 자유주의적 정신은 상당히 일관되게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경제 및 인도주의적 활동을 지지함으로써 보통 정치와 군사와 관련 활동만이 분위기 순환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분위기 이론'이 미국외교정책의 긴 역사를 설명하는 데 꽤 설득력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과 베트남에 대(對)공산주의 봉쇄정책으로 외향성의 극단을 이뤘던 미국외교정책은 1969년 닉슨 대통령의 '닉슨 독트린'을 출발점으로 내향성으로 돌아섰다.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한국에서도 1개 사단의 병력을 철수했다. 이러한 미국의 내향성은 포드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국외교정책은 급속히 외향성으로 반전됐다. 레이건 대통령의 신(新)보수주의는 그의 후임자인 제41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의 걸프전쟁과 제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다자주의를 거쳐 제43대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외향성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제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再)균형정책이 온건한 외향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7년 1월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내세우면서 급격한 내향성으로 미국외교정책의 방향을 틀었다. 클링버그의 분위기 순환 이론을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적용한다면 제1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정책, 즉 미국의 고립주의정책이 시작된 시점은 미국이 또 다른 내향성 기간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하며 그때부터 20여 년간, 즉 앞으로 적어도 10여 년간 미국 국민은 이런 내향성 분위기의 심화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제46대 조 바이든 대통령도 내향성의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상이 타당한 것이라면 돌아올 트럼프의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정책은 세계적인 불안정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지난 세기에 수행했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종의 '경찰'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유럽에서 지속적인 러시아의 위협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혹은 지정학적 이론상으로 보나 역외 균형자이다. 역외균형은 다극적 국제체제하에서 해양강대국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이고 21세기에 들어 이런 다극적 국제체제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역외균형 전략의 주요 목표는 미래 강대국 간 전쟁에서 자유로워지고 국제체제에서 상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역외균형정책은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들에는 부담의 공유가 아니라 부담의 이전이 요구된다. 동맹은 침략자에 대처하는 부담을 공유하지만, 집단행동의 문제점 때문에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동맹국들이 부담을 적시에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균형이 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내부지향성의 고립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미국의 지정학적 이론이 충분한 정치적 지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즉 1948년 미국 주도의 NATO가 결성되기 이전 유럽의 전통적인 강대국들인 독일, 프랑스,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모든 국가가 대서양 건너 미국의 지원 없이도 유럽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무장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왜냐하면 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NATO에 대한 의존이 거의 타성화되어 그동안 향유해 온 유럽의 평화와 안전을 자신의 힘으로 유지할 의향이나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들 사이에 안보의 책임부담의 문제로 인한 지속적인 분열이 그들 사이에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국과 동맹국 간의 분열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일본은 기꺼이 '책임부담국'이 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이미 2014년 7월 1일 일본 헌법 제9조의 수정해석을 승인했다. 이른바 일본의 아베 독트린은 일본의 국방비 증가와 방위대강 수정은 물론이고 다양한 우발사건 발생 시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본은 전후 새로운 국제적 경로를 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일본의 신(新)노선은 미국과의 대칭적 파트너십 혹은 완전한 군사전략적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보다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완전한 독립적 행위자 대신에 미국의 강력한 지원자로서 미국과의 더 밀접한 동맹관계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적 미국의 동맹체제 내에서 '아시아의 영국'이 되는 것만을 바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역사로부터 도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한국은 미-중 간 대결의 상황에서도 중국에 대한 자극을 피하고 직접적인 안보 위협인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자율성 추구의 정책은 미국과의 동맹에서 균열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한국의 모색은 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이 자멸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균형이라는 것은 모든 나라가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와 같은 것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오늘날 분명히 선진국이지만 아직 강대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중 간 균형자가 될 수 없다. 한국에 안전한 전략은 가장 강한 국가에 편승하는 것이고 이것은 오랜 역사에서 한민족이 생존할 수 있었던 소중한 비결이다. 1940년 영국의 처칠 수상이 당시 아직 중립국이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했던 말을 변용하여 표현하자면 "한국의 목소리와 힘을 너무 오래 억제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한국은 고질적으로 요란하기만 한 오케스트라 연습장 같은 정치를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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